하루키가 들었던 먼 북소리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p15
그렇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먼 곳에서 북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온갖 여행에세이와 자기계발서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무라카미하루키의 <먼북소리>
무려 30년 전인 1987~89년에 유럽에 체류하며 쓴 에세인데 지금 읽어도 세월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만큼 문장들이 세련됐다.
결과론적이지만 이렇게 마흔 즈음인 서른 일곱에 일본을 떠나 마흔 살까지 유럽에서 살며 쓴 소설은 그를 세계적인 소설가의 반열에 오르게 해줬다. 바로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가 이 때 태어난 것.
30년이 지난 책을 읽으며 공감하고, 나도 하루키처럼 여행을 다녀오면 무언가 몰두할 만한 영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희망에 퇴사와 세계여행을 다짐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마흔 살이란 하나의 큰 전환점이어서,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무엇인가를 뒤에 남겨두고 가는 대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
마흔 살이란 분수령을 넘음으로써, 다시 말해서 한 단계 더 나이를 더먹음으로써, 그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생각했다. 그때까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던 일을 앞으로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하루키가 마흔 살에 대해 풀어낸 것은 나에게는 서른 살이다. 올해 서른이 되었고, 친구들이 하나둘씩 엄마가 되어가는 걸 보며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퇴사와 여행을 결심했다. 물론 지금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던 일을 앞으로 할 수 없게 될 지 모른다. 예를들면 회사 돈으로 택시타기, 회사 돈으로 맛있는 것 먹기? 하지만 생각해보라. 회사 돈으로 맛있는 것을 먹으려면 함께 더이상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회사 사람들과 함께였고, 회사 돈으로 택시를 탈 때도 원치 않는 회식, 재미없는 외근 길이었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그것도 내가 외국으로 나가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일본에 그대로 있다가는 일상생활에 얽매여서 그냥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버릴 것 같았다. p15
서른 즈음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한국에 그대로 있다가는 일상생활에 얽매여서 그냥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말하자면 정말로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그런 생활은 일본에서는 불가능할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세계여행을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처럼, 물론 여행이 극적으로 모든 걸 바꿔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하루키처럼 심플하게 여행을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에서 보낸 3년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두 마리의 벌, 조르지오와 카를로는 지금도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다. 그들이 예언했던 것처럼 그저 나이만 먹었을 뿐이고 아무것도 해결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한다.
다시 한 번 본래의 위치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이 아닌가, 훨씬 안 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라고. 그렇다, 나는 낙관적인 인간인 것이다.
내게는 지금도 간혹 먼 북소리가 들린다. 막무가내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렇게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그리고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동시에 어디에도 갈 수 없는 것이다.
하루키가 30년 전에 들었던 멀리서 들려오는 먼 북소리를 외면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