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쯤 쉬어가도 괜찮아. 갭이어(Gap year)
지독한 취준생의 시절을 지나 꿈에 그리던 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인간은 금세 적응해 버리는 이기적인 동물이 아니던가.
출근하는 한 걸음마다 삼배 절이라도 하며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는 이제 어떻게 하면 옮기거나 나올 수 있을까 고민하는 대상이 되었다.
퇴준생, 퇴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살 것인지, 아니면 마음의 소리를 따라서 쿨(해 보이게) 사표부터 내고 볼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
재밌는 건 내 주위 퇴준생 중에는 소위 엄친아, 엄친딸들이 꽤 많다.
우리는 왜 남들이 들어가지 못해 안달인 곳을 다니며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곳을 보고 있을까?
그 답은 아마 '갭이어'의 부재에 있을 수 있다.
갭이어(Gap Year)란, 미국, 유럽 등 우리가 소위 말하는 선진국의 고등학생이 대학 진학하기 전, 1년가량 여행 혹은 일을 하며 '자신을 찾는 시간'을 말한다. 영국의 왕자들도 갭이어를 가졌다고 하니 꽤나 보편적인 시간인 것 같다.
그렇게 선택한 전공을 공부하고, 직업을 가지면 바로 성적에 맞춰 들어간 대학교를 나와 남들이 좋다고 하는 회사에 들어간 사람보다 훨씬 더 만족하며 살아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외국 친구들에게 갭이어란, 자신이 해야 하는 일, 즉 직업을 위해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해야 되는 걸 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하는 시간으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영화 한 편을 볼 때도 영화에 대한 정보나 영화평을 찾아본다. 영화를 볼 때도 이런 과정을 거치는데 직업 선택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탐색하고 점검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지, 신기할 정도다.
『여행은 최고의 공부다』안시준
갭이어를 듣는 순간, 이것만큼 우리 여행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가 없다고 생각했다. 안식년을 갖는 교수가 직업이 아닌 이상 '자발적으로 안식년을 갖자'라고 줄곧 생각해왔는데 '갭이어'라니 너무나 멋있지 않은가? 비록 10년이 늦었더라도.
그리고 갭이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어 검색창에 입력하자마자 나온 '한국 갭이어'. 역시 나보다 앞서 나가고 부지런한 사람은 차고 넘친다. 한국 갭이어를 설립한 안시준 님의 책을 읽으며 공감하고 용기를 내었다.
'갭이어' 컨설팅을 하면서 만나는 젊은 친구들에게 뭐가 가장 두렵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거라고 답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직업, 타인이 만들어놓은 좋은 직업이라는 몇 가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미친 듯 공부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직업, 타인이 만들어놓은 좋은 직업이라는 몇 가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미친 듯 공부만 한다. 그러다가 대학에만 가면 무엇인가 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중학생 때는 특목고만 가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니까 열심히 학원에서 공부하고 그렇게 특목고를 갔더니, 외고에서는 수능 말고 수시 전형으로 가면 더 유리하대서 내신과 수능 공부하기에도 벅찬 시간에 토플/토익/텝스, AP라는 미국 학생들이 보는 시험, 제2외국어, 여러 대외활동 등을 해가며 부모님의 등골을 뽑아먹었다.
그렇게 해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에 갔더니 웬걸, 대기업에 입사하려면 고등학생 때와 같은 스펙 쌓는 활동들을 끊임없이 해야 한단다.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법대가 막 없어지고 로스쿨이 생기면서 경영학과가 문과에서 가장 취업이 잘 되는, 고로 입학 문턱이 높은 과였다. 남들은 복수 전공하려고 안달인 그 학과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답안지가 이렇게 5지선다였다.
1. 대기업 입사
2. 외국계 기업 입사
3. 회계사
4. 로스쿨
5. 석박사
내가 가진 1~5번까지의 답지 중에 2번 답지가 가장 멋있어 보이고, 왠지 내 꿈일 것 같아 선택했는데 들어와 보니 사실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었단 걸 깨달았다.
우리는 영화 한 편을 볼 때도 영화에 대한 정보나 영화평을 찾아본다. 영화를 볼 때도 이런 과정을 거치는데 직업 선택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탐색하고 점검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지, 신기할 정도다.
『여행은 최고의 공부다』안시준
평생 일하는 8만 시간에 적용해본다면,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데 4,000시간 정도 쓰는 건 충분히 타당하다. 이는 일하는 시간으로 따질 때 2년에 해당한다. 4,000시간 또는 2년의 시간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는 데 쓰는 사람은 분명 뭔가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낼 것이다.
『타이탄의 도구들』p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