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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Dec 06. 2018

[퇴사하고 세계여행]디지털노마드가 별건가요.

(D+13,치앙마이) 바른 자세로 앉기


2018.11.13

퇴사하고 세계여행 D+13, in Chiangmai




[그녀의 시선] 디지털노마드가 별건가요.


디지털노마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떠나온 여행이다. 게다가 디지털노마드의 성지라는 치앙마이에 왔으니 더 그럴수밖에.

 

아침에 요가가는 길에 엄마에게 인터넷 스토어에서 주문들어온 게 잘 보이지 않는다는 카톡을 받았다. 요가원에 도착하여 부모님 가구점 상품을 네이버스토어에 올리고 주문을 처리해주느라 패드를 켰다. 테더링으로 인터넷을 잡아 한국에 있는 것처럼 주문 건 처리를 도와드렸다. 10분 정도 일이 끝나고 패드를 껐는데 뭐랄까, 일이 아니라 생산적인 활동을 한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요가원까지 와서 일을 해야하다니!’ 이런 마음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에 뿌듯하기까지 하고, 잠시나마 디지털노마드가 된 것 같아 즐거웠다.




이 여행을 오게 된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일하기 싫어서’ 였다.

내 삶도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담당하는 제품의 내년, 3년, 심지어 5년 이후의 일까지 예측하고 그걸 숫자로 증명해내야 하는 일에 염증이 났다. 뭐 하나라도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면 윗 선에 보고해야하는 facny해보이는 자료를 만들어내야하는 것에 싫증이 났다. 회사에서 연차가 쌓일수록 진짜 비즈니스를 위한 ‘일’을 하기보다 ‘본부장님 자료’, ‘사장님 자료’, ‘외국 높은 사람들에게 보고하는 자료’를 위한 일을 하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그 윗사람들도 결국엔 자신의 상사와 주주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증명하고 보여주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보였고, 이 곳에 더 오래 있을수록 자료 만드는 스킬만 늘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만 둬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일’이 하기 싫어 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왔다.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생각만해도 가슴이 뛰던 커리어와 일에 대한 환상은 깨져버렸다.


하지만 회사를 나오고 여행을 떠나오니 멋있어 보이는 일이 아니더라도 오로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부모님 가게를 위한 일들을 돕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하루하루를 기록해내는 일은 밤을 새도 힘들지 않다. 나는 일이 싫어서 떠난 게 아니라 남을 위한 일을 해야하는 회사라는 조직이 싫어서 떠난 것이였다. 아무리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정이 들고 인간적으로는 좋지만 회사라는 조직 자체는 생리적으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성질인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고 내 마음에 내키지않는 남이 시키는 일이 하기 싫다면 회사를 떠나는 게 맞다.




하지만 회사를 떠난다고 해서 일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여행을 하며 훗날 자산이 될 나만의 컨텐츠를 만들고 나를 홍보하는 게 디지털노마드 아닐까. 매일 아침 한국 주식 시장이 열리는 시간에 일어나 주식을 사고 팔며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것도 디지털노마드인 것이다. 꼭 디자이너, 엔지니어, 작가처럼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디지털노마드가 될 수 있다.


‘왜 나는 이과를 안가고 문과에 와서 엔지니어가 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애매하게 공부를 잘해서 이렇다할 기술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을까, 차라리 네일아트나 미용을 배웠으면 해외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을텐데’


이런 쓸모없는 후회를 할 필요없이 그저 내 마음이 내키는대로 재밌는 ‘일’을 하다보면 이렇게 여행지에 와서 일을 하며 나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님만해민에서 요가를 하고, 삼시세끼를 사먹고 세탁을 하고 장보기까지 했다. 빠르게 흘러가는 느린 일상들.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행복할 것 같다. 황송하다.




[그의 시선] 바른 자세로 앉기


요가를 처음 접한게 벌써 4개월 전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요가보다 맨몸운동을 더 많이 했는데, 여행을 와서는 요가수련에 더 재미를 붙이고 있다. 요가는 와이프과 같이 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가는 근력도 많이 필요로 하지만 수련을 오래 한다고 해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는 것처럼 근육이 커지지는 않는다. 요가가 필요로 하는 최대 근력은 자기 몸무게(body-weight)를 지탱할 만한 힘이기 때문이다. (웨이트트레이닝은 자기 몸무게 그 이상의 바벨이나 덤벨로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가를 하면서 내가 부족한 신체능력은 근력보다는 유연성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 round-shoulder (말린 어깨)부터 좌우골반의 불균형, 그리고 짧은 햄스트링까지. 몸의 정렬과 유연성이 필요로 하는 동작들에는 아직 많은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몸의 정렬과 유연성, 근력 모두는 결국 바른자세로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위함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운동할 때 뿐 아니라 평상시에 바른 자세를 갖도록 인지하는게 중요하다. 24시간 중에 운동으로 교정할 수 있는 시간은 1-2시간. 남은 시간은 결국 평상시에 바른 자세와 몸의 정렬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요가 수업을 듣고,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연남동에 있을 법한 아주 까리하고 맛있는 브런치카페였는데, 그곳 의자가 등받침이 없는 의자였다. 처음 앉을 때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앉았지만 이내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를 꼬거나 구부정하게 앉게 되었다. 바른 자세로 앉는다는게 그만큼 어렵다.


그래도 4개월 전에 비하면 나의 몸은 많이 유연해지고 균형을 찾았다. 이렇게 꾸준히 수련을 하면, 지금은 안되는 동작들도 하게 되고, 더 바른 정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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