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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행 비행기에서 나는 숨죽여 울었다

by 이진리

프랑수아즈 사강, 보들레르, 랭보의 나라라는 것만으로도 내가 프랑스에 갈 이유는 충분했다. 문예창작학과 신입생 시절부터 프랑스를 사랑해 왔으니 나의 외사랑은 어언 10년이 넘은 셈이다. 그렇게 나는 10년 이상을 프랑스라는 나라를 꾸준히 생각하며 보냈다.



그런데 왜 나는 샤를드골행 비행기 안에서 숨죽여 울었을까.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간 게 이번은 처음은 아니다. 4년 전, 나는 이미 미국에 한 번 갔다 온 적이 있었다. 여행 목적은 아니었고 가족 중 한 명이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어 참석 차 갔었다. 결혼식을 돕는 일정은 꽤 빡빡했고 9박 10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꾸벅꾸벅 졸았었다. 어쨌든 쪽잠을 잔 덕에 약 19시간, 당연히 한 번의 경유를 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을 나름대로 잘 버텨냈었다.



미국에 다녀온 뒤, 4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동안 내게는 불면증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내 몸에 함부로 들어온 불청객은 뻔뻔하게 눌러앉아 나를 괴롭혔다. 당연히 정신과를 찾았고 약을 먹어야 겨우 잘 수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들뜬 나머지 나는 내가 불면증 환자라는 걸 깜빡 잊고 있었다.





병원에 가기 전까지 나는 내가 그냥 잠을 자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불면증 환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받은 전문적인 결과에 따르면 내 불면은 불안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나의 불안 정도는 고등학교 3학년이 겪는 불안보다 훨씬 높다.



나의 병명은 파리 여행 전, 혹시 몰라 발급받은 영문 증명서(Medical Certificate)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Diagnosis. Unspecified mood[affective] disorder : 진단명. 불특정 기분[정서] 장애

-The patient had shown anxiety and insomnia for long time : 이 환자는 오랫동안 불안과 불면 증세를 보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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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서 파리로 향하는 약 14시간의 비행을 약 4시간쯤 남겨두고서 나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몸이 괴로워서 눈물이 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인천에서 하노이로 향하는 비행기 안, 내 옆자리에 앉은 일본인은 잘만 자던데. 하노이에서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 내 옆에 앉은 베트남 여권을 가진 또래 여자는 귀여운 캐릭터 모자를 뒤집어쓴 채 잘만 자는데. 손이 떨리고 살면서 처음으로 허벅지에 경련이 일 정도로 피곤한 몸은 왜 여전히 깨어 있는가.



코로나가 유행이라 하여 혹시 몰라 챙겨간 마스크를 안대 대신으로 사용하며 나는 숨죽여 울었다. 도착 시간이 알고 싶어서 마스크를 눈에서 벗겨냈을 때 문득 옆을 보게 되었다. 베트남 국적의 여자가 보다 멈춰둔 영화는 <인사이드 아웃>이었다. 화면 속에는 '슬픔이'가 너무 슬픈 표정을 짓고 있어서 나는 조금 더 슬퍼졌다. 마스크를 다시 눈에 쓰고 또다시 펑펑 울었다. 하지만 그녀를 깨우고 싶지는 않아서 최대한 소리를 참으면서 울었다. 그녀는 친절하니까. 어떻게든 잠들어 보려 애를 쓰던 때 (아마 그녀는 내가 잠든 줄 알았을 것이다.) 기내 승무원이 나눠준 물병을 내 자리에 조용히 놔줄 만큼 친절한 사람이었으니까. 만약 내가 우는 걸 알았다면 그녀는 분명 나를 걱정했을 테니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달라진 점은 안대를 썼다는 것. 첫 번째 기내식을 먹고 화장실을 다녀올 때, 어떤 사람이 안대를 쓰고 있는 걸 보게 되었고 나는 곧바로 기내 승무원에게 안대를 요청했다. 돌아오는 동안에도 나는 조금 울었다. 울고 나면 한동안은 안구가 덜 뻑뻑해진다. 이걸 장점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비행기에서 우는 사람은 나 혼자만은 아니다. 어느 비행기에나 있는 어린아이들이 꼭 울음을 터뜨린다. 이 상황이 힘든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구나.



당연하게도, 썩 위로는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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