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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넘어 낯선 나라 룩셈부르크로 가기까지

여자 혼자 떠난 유럽여행 2. TGV 타고 국경 넘기

by 이진리

대학생 시절부터 꿈꿔왔던 나 홀로 파리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룩셈부르크로 가는 기차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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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허락된 일정은 고작 6일. 파리 곳곳을 다 돌아다니기에도 빠듯한 일정 속에 룩셈부르크라는 나라가 끼어든 건, 프랑스 현지인들이 말해주는 생생한 프랑스를 먼저 경험해 보려 다운로드한 어플 때문이었다.


영어로 읽고 말하는 데 익숙해질 겸해서 다운로드한 어플에서 나는 룩셈부르크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한국인이고 곧 혼자 파리 여행을 갈 생각이야."

"그럼 룩셈부르크에도 와. TGV로 2시간이면 도착해. 그리고 룩셈부르크는 작은 나라야. 하루만으로도 충분히 룩셈부르크를 즐길 수 있어."

"오?"


유럽에서는 국경을 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듯,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그 나라에 사는 한 사람을 알고 있기만 해도 한 번쯤 가보고 싶어지는 게 여행객이 가지는 특권이 아닐까. 그리고 어쩌다 알게 된 그 사람이 애국심이 투철한 사람이라면. 하루에 한 번 이상, 룩셈부르크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기왕 가는 유럽여행, 국경 한번 넘어볼까? SNSF 어플까지 다운로드한 기껏 다진 의지가 무색하게 파리에서 룩셈부르크로 향하는 직행 기차(TGV)는 없었다. 룩셈부르크로 향하는 몇몇 구간이 운행되지 않으므로 갈 수 없다는 공지를 보며 나는 오히려 한국인답게 의지를 다졌다.


어떻게든 가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온갖 유럽 기차 예매 사이트를 뒤졌고 마침내 예매에 성공했다. (이것 또한 아이러니한 게, 유럽 기차표 예약을 한국 사이트를 통해서 했다.) 룩셈부르크 직행 기차표는 없어서 룩셈부르크 인근 마을인 베템부르크 (Bettembourg)까지 가고 거기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방법을 선택했다.



KakaoTalk_20250213_212745720_01.jpg 파리 동역. 오전 10시 40분에 출발하는 베템부르크 행 열차를 탔다


호텔 예약까지 마쳤으니 나는 정말로 룩셈부르크에 갈 일만 남았다. TGV에서 캐리어 도난 사고가 빈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캐리어도 없이, 어깨에 메는 가방 하나와 손에 드는 가방 하나만 덜컥 들고서 나는 국경을 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베템부르크 역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30년 넘게 몰랐던 나의 취향을 새로 알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내가 기차 여행을 꽤나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기차 여행이 이번이 처음인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기차를 종종 탄 적이 있었는데 국내여행이라는 익숙함 때문인지 들뜬다는 느낌은 없다고 느꼈었는데, 룩셈부르크로 향하는 TGV 안에서 나는 오히려 한국에서의 기차 여행을 떠올리며 그 시절이 꽤나 호시절이었음을 뒤늦게 곱씹었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베템부르크. 시골에 가까운 베템부르크에서 중앙 도시인 룩셈부르크로 향하는 동안 서서히 달라지는 풍경들을 보며 나는 내가 국경을 넘었다는 걸 깨달았다.



KakaoTalk_20250213_212745720_06.jpg 룩셈부르크 기차역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으로는 나를 호텔로 안내해 구글 맵이 켜진 휴대폰을 들고 나는 트램에 올랐다. (참고로 룩셈부르크는 트램이 무료다.) 친구들 사이에서 길치로 유명한 내가(나는 지도 앱을 보면서 가도 길을 잃는 사람이다.) 이 낯선 나라의 길을 걷고 걸어 호텔까지 잘 찾아갔다는 게 나는 아직도 놀라울 따름이다.



KakaoTalk_20250213_212745720_09.jpg 호텔 로비에서. 저 커다란 짐가방을 사간 게 신의 한 수였다.

호텔에 짐을 놓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관광.



KakaoTalk_20250213_212745720_16.jpg 륵셈부르크는 작고 조용하고 평화롭다


룩셈부르크는 몇 시간이면 다 볼 수 있는 작은 나라라는 현지인의 말답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데 채 3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룩셈부르크는 어떤 부분에서는 파리보다 현대적이다. 그러나 유럽 답게 옛날 건물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이고 나는 그 부분을 아주 사랑한다. 룩셈부르크 시(룩셈부르크 중앙을 룩셈부르크 시라고 부른다고 한다)를 여행하는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주 작고 오밀조밀한 나라. 아름다우면서도 차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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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다시금 룩셈부르크에서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고 있다. 혹시 유럽행 초특가 항공권이 없나 매일매일 항공사 및 여행사 사이트를 뒤지고 요즘. 어떤 나라로 가든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언젠가 꼭 다시 유럽에 갈 거고, 한 번쯤 또 국경을 넘을 것이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그 목적지가 룩셈부르크가 아닐 거라는 다짐은 없다.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 룩셈부르크. 또 가지 않을까? 아마도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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