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유럽 여행 3. 하루 만에 즐기는 낯선 나라 룩셈부르크
파리를 온전히 즐기기도 모자란 일주일이라는 여행 기간 동안, 나는 하루를 쪼개 국경을 넘어 룩셈부르크로 향했다.
직접 가기 전 찾아본 룩셈부르크에 대한 설명은 대략 이러했다. 제주도 면적의 1.4배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 1인당 GDP가 가장 높은 나라. 모든 트램이 무료라 교통이 편리한 나라.
나는 활자로 된 것들을 무한히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유럽여행에서는 눈으로 본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
낮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의 화려하지만 고풍스러운 유럽 특유의 건물 양식. 고집스러우리만큼 전통을 사랑하는 유럽의 건물 양식이,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굉장히 생경하다. 경유를 한다면 비행기를 20시간 가까이 타고 가야 하는 그 먼 곳의 건물들을 나는 아주 많이 사랑한다.
룩셈부르크로 가는 직행 TGV가 있었다면 곧바로 이 풍경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출발지는 프랑스였다. 파업이 일상이기로 유명한.
직행 티켓을 구하지 못한 나는 베템부르크라는 조그마한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고 룩셈부르크에 도착했다. 기차역을 보지 못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버스는 기차역과 걸어서 30초도 안 되는 거리에 정차했다. '굳이' 기차역을 보겠다고 갔으니 또 '굳이' 기차역 내부까지 들어가 보았다.
복잡하고 컸던 파리 동역과 달리 룩셈부르크의 기차역은 소박하고 잔잔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많이 북적이지는 않아서 나는 이 따뜻한 색감과 천장의 아름다움을 눈에다 잘 넣고 올 수 있었다. 무거운 여행용 가방을 낑낑대며 메고 간 게 아쉽지 않을 정도로.
2. 초콜릿 하우스
룩셈부르크에 살고 있는 현지인에게 여행 전부터 당부했던 게 있었다. "나 무조건 초콜릿 하우스 갈 거야" 초콜릿 하우스를 갈망하는 나를 현지인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말투로 되물었다 "거긴 그냥 초콜릿 하우스일 뿐이야. 도대체 왜...?"
"룩셈부르크 여행 갔다 온 한국인들은 전부 초콜릿 하우스 들렀다 온단 말이야!"
실제로 한국인들이 쓴 룩셈부르크 여행 후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바로 초콜릿 하우스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얼마 있지 않아 호텔을 나선 내가 제일 먼저 간 곳이 바로 초콜릿 하우스였다.
초콜릿 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들리는 익숙한 언어. 예상대로 한국어였다. 한국인들이 룩셈부르크의 초콜릿 하우스에 대한 여행 후기를 너무 많이 남겨둬서 그런지, 아시아 사람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룩셈부르크에서(하루 동안 있어본 본 결과, 체감상 80%가 백인인 것 같았다) 한국인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반가웠다.
그런데 왜 초콜릿 하우스에 대한 여행 후기가 이토록 많은 걸까? 아마도 초콜릿을 즐기는 형식 때문이 아닐까.
초콜릿 하우스라는 이름답게, 내부에는 온갖 종류의 초콜릿들과 초콜릿으로 만든 케이크들이 참 많았다. 내가 먹고 싶었던 건(한 마디로 한국인 여행객들이 후기를 제일 많이 남겨 놓은 건) 바로 이 스푼 형식으로 된 초콜릿이었다.
스푼 형식의 초콜릿을 제대로 즐기려면 반드시 우유를 주문해야 한다. 네모난 머그컵에 담겨 나오는 우유에 저 스푼 형식의 초콜릿을 담근 후 녹여 먹는 것이다. 먹는 과정부터가 재밌다. (얼마나 녹았지? 확인한 후 다시 담그기)
초콜릿이 완전히 녹은 우유는 예상대로 굉장히 달아지는데 다크 초콜릿처럼 쓴맛 나는 초콜릿보다 단맛을 더욱 좋아하기에 내 입맛에는 잘 맞았다. (KIDS ONLY 스푼을 고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위스키가 들어가 있는 성인용 초콜릿도 내 호기심을 끌긴 했지만 나는 그냥 일반 초콜릿을 더 좋아한다.)
3.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파리가 고풍스럽게 화려하다면 룩셈부르크는 동화 같으면서도 현대적이다.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가지 키워드가 룩셈부르크의 무드를 관통하는 말일 것이다.
룩셈부르크의 메인 거리에 가면 각종 명품 매장들이 즐비해 있다. 파리에 있던 백화점과 이름이 같아 신기했던 라파예트 백화점으로 가는 길목. 갑자기 에르메스? 이번에는 샤넬이네? 입이 떡 벌어지는 그런 명품 매장들이 많았다.
온갖 명품 매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거리가 깨끗했기에 룩셈부르크의 신시가지는 깨끗하고 세련된 고급스럽기에 마네킹들이 입고 있는 (아마도) 올해의 신상 옷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관광객으로서 더 기억에 남았던 곳은 메인 거리인 신시가지보다 구시가지 쪽이었다.
어떤 높은 다리 위를 걷다 보면 룩셈부르크의 아기자기하고 뾰족뾰족한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거리를 걷다 보면 동화에 나올 법한 정말 작은 건물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동화 속의 집 같은 곳에서 사는 사람이 정말 있는 것이다.
룩셈부크르 구시가지 쪽에 가면 나무와 강이 어우러지는 풍경들을 볼 수 있는데 산책하듯 둘러보면 된다. 여유롭게 걷다 보면 자연과 어우러진, 내가 사랑하는 유럽의 건물 양식들을 실컷 볼 수 있다. 어쩌다 보게 되는 산책 중인 강아지들은 덤이다. 유럽에는 길거리 흡연자들이 많은데 구시가지 쪽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언젠가는 또 가야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나라. 서유럽 어딘가에 있는 아주 작은 이 나라를 나는 언젠가 다시 한번 갈 것이다. 대신 그때는 조금 더 길게 머물러야지. 내게 있어 여행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 좋아하는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