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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차 브런치 작가가 협업 계약을 맺은 과정

드디어 나의 이야기를 팔 수 있게 되었다

by 이진리

브런치 작가가 된 지 올해로 4년 째지만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과 어울리지 않게 나는 브런치에 자주 소홀했었다. 쌓여 있는, 반드시 내 손을 거쳐야 하는 일들 때문이라는 건 사실 핑계다. 아주 짧은 분량이라도 좋으니 글을 발행하는 성실함이 브런치 작가의 중요 덕목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자주 길을 잃는 사람이었다. 어떤 주제로 어떤 글을 써야 내가 가장 성실해질지 몰랐었다. 그래서 가끔 기억날 때 한 번씩 들어와서 글 하나를 슬쩍 남겨 놓고 떠나곤 했다. 그리고 다시 브런치에 돌아왔을 때, 과거의 글은 전부 비공개 처리를 해놓고 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하나 써놓고 떠나곤 했다. 브런치를 떠도는 유령처럼.


그리고 작년. 나는 유럽으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그토록 바라던 파리로 향하는 기내에서 정말 크게 깨달은 것은 내가 불면증 환자라는 점이었다. 1회 경유를 해야 했기에 약 20시간에 가까운 비행을 하는 동안 이코노미 좌석에서 온몸이 괴로워서 나는 찔찔 울었는데 한바탕 숨죽여 울고 나서 스스로를 진정시키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 불면의 가장 하단에는 불안이라는 나쁜 녀석이 있고 불안과 불면이 합쳐진 비행은 몸을 참 불편하게 하는구나. 3개의 불(不)이 들어간 단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 단어를 조합해 만든 나만의 키워드. <불안과 불면 사이의 불편>.


돌아오는 비행에서도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불안과 불면 사이의 불편, 불안과 불면 사이의 불편...) 왔다. 이 키워드들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얼마 후에 브런치에다 글을 올렸다. 기내에서의 불면이 얼마나 괴로웠는지에 대한 이야기였고 어느 때와 다르지 않게 딱 한 편의 글만 발행해 둔 뒤 다시 연기처럼 스르륵 사라졌었다.


그런 글을 썼다는 걸 나조차도 잊고 있던 어느 날.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브런치 스토리에서 보낸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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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에서의 불편을 해소할 아이템을 개발 중인 회사에서 나에게 협업 제안을 주었다. 이런 제품이 있다면 나에게 분명 좋을 텐데, 혹시 그냥 아무에게나 뿌리듯 보낸 메일은 아닐까? 그래도 우선 얘기는 나눠보자. 주고받은 메일에 적힌 회사 대표님의 전화번호로.


통화 일정을 정했고, 정해진 시간에 통화를 했다. 과연 어떤 제품인지, 어떤 취지로 만드시는 건지. 통화를 하며 나는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잠은 못 자지만 여행은 가고 싶은 내게 기내에서의 불안을 해소해 주는 그런 제품이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서.


출판사로부터 출간 계약 제안을 받는 분들의 이야기는 브런치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본인의 사업과 관련한 강의 제안을 받았다는 이야기 또한 많이 읽어보았다. 그렇지만 여행 제품과 브런치와의 콜라보라니.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생소했던 터라 나는 통화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다다음 주까지 제가 몇 편의 글을 더 발행해 볼게요. 그걸 읽어보신 후에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정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 후에 나는 몇 편의 글을 더 발행했고 제안 주신 분과의 커피 챗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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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여행 제품의 만남은 어떤 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역삼역의 한 커피숍에서 나눈 이야기를 한 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나는 이제 브런치에 올리는 모든 글을 팔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정의 고료를 받고 원고를 발행하는 사람이라니.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은, 내가 쓴 글이 어떤 식으로든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다르지 않은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책임감이라는 말은 무겁지만 또 한 편으로는 고마운 손님이기도 하다.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브런치를 유령처럼 떠도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게다가 참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브런치 작가 심사 때 썼던 내용이 바로 <불면을 버티는 법>이었다는 것이다. 브런치를 소극적으로 이용하던 시절. 찔끔찔끔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긴 했지만 안 그래도 사회 곳곳에 숨은 슬픔을 괜히 더 풀어내고 싶지 않아 내 삶의 중요한 지점이 아닌 주변 지점들과 관련한 글들을 많이 썼었다. 4년 만에 다시 불면증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을 때, 비로소 솔직해진 순간에 나에게 협업 제안이 왔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사회에 창궐한 슬픔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하나를 더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하지만 브런치를 떠도는 지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불면에 대해 다른 정의를 내렸다. 불면이라는 녀석은 내가 가진 슬픔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장애물일 뿐이라는 것. 나는 불면을 잘 달래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불면을 달랠 수 있도록 필요한 최선의 것들을 순간마다 취할 거라는 것도 안다.


브런치에서 이뤄진 협업이 어디까지 이뤄질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전부 이곳에 기록하려 한다.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내가 글을 쓸 거라는 건 확실하니 아주 꾸밈없이, 때로는 즐겁게. 더 이상 사라지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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