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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여행하는 동안 기억해야 할 한 가지 단어

여자 혼자 유럽 여행 4. 봉쥬르(Bonjour)의 힘

by 이진리

파리까지 가는 약 20시간의 여정. 그동안 한숨도 자지 못한 나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수면제 두 알을 삼키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나는 약 16시간을 잤다.


눈을 뜨긴 떴지만 내 정신은 여전히 몽롱했다. 수면제 두 알의 약 기운 때문이었다. 몽롱한 정신을 깨우려 몸을 조금씩 움직였더니 갑자기 허기가 찾아왔다. 장거리 비행을 하는 동안 점점 속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결국 마지막 기내식에는 손도 대지 못했으니, 24시간이 넘게 아무것도 먹지 못한 셈이라 허기가 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늘을 건너 미식의 도시까지 왔으니 현지 맛집을 찾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만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비행기에서 일었던 경련과 울렁거림만 잦아든 상태였기에 구글 지도를 들여다보며 낯선 나라의 골목을 누빌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내가 눈을 뜬 시간은 약 오전 8시 40분쯤이었다. 호텔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기만 하면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나는 머리만 질끈 묶은 뒤 로비 층으로 향했다.


로비로 내려가자, 내 체크인을 도와줬던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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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자리를 잡은 뒤, 나는 음식을 하나씩 훑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빈 속인데 너무 무거운 음식은 피하는 게 낫겠지. 샐러드부터 담기 시작하면 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옆에 와서 섰다. 저, 저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요... 속으로 생각하며 흔들리는 눈길로 그녀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봉쥬르.


알고 보니 그녀는 이 호텔의 직원이었고 (아마도) 호텔 조식을 책임지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가 내게 말을 건 이유는 호텔의 조식 서비스 중 하나인 사이드 메뉴를 추가 주문할 것인지, 아닌지 물어보려 한 것이었다. 조금은 알아듣기 힘든, 프렌치 억양이 섞인 영어로 메뉴 설명을 듣고서 나는 반숙 계란을 프라이를 주문했다.


내 속이 음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아주 천천히 식사를 마친 뒤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그녀가 또다시 내게 말했다. 메르시.


KakaoTalk_20250224_211744519.jpg 셋째 날의 조식. 그래도 속이 좀 괜찮아져서 고기류를 조금 먹었다.


밥을 먹고 나니 힘이 좀 났다. 슬슬 몸을 움직여도 될 것 같았다. 샤워를 마치고 간단히 화장을 하고, 파리에 도착한 지 약 28시간 만에 드.디.어. 파리의 거리를 거닐기 시작했다. 서점도 들렀다가 미술관도 들렀다가, 나름대로 눈에 익은 골목도 생길 무렵, '헬로'보다 '봉쥬르'를 더 많이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감 넘치게 "봉쥬르"를 외친 뒤에는, 비록 어쩔 수 없이 영어가 따라붙긴 했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들어갈 갈 때만큼은 봉쥬르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땡큐"를 말해버린 후에는 곧바로 "메르시"를 덧붙이기도 했다.


봉쥬르와 메르시는 친구다. 아주 친한 단짝 친구라 절대 갈라놓아선 안 된다. 그리고 나름대로 따라 하는 재미도 있다. 한국인에게는 '봉쥬르'지만 잘 들어보면 '봉쥬흐'에 가까운, 프랑스어 특유의 억양을 발음을 따라 해 보기도 하면서 날이 갈수록 (내 생각에는) 진짜 프랑스어에 가까워지는 봉쥬르라는 소소한 재미를 챙기기도 했다.


파리처럼 거대한 관광지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영어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 나라에 갔으면 인사 정도는 그 나라의 말로 하는 게 예의니까. 그리고 "헬로"보다 "봉쥬르"라고 했을 때 파리 사람들이 더 정겨워지고 살가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프랑스에 갔을 때 웬만하면 봉쥬르를 입에 달고 살아 보자. 기왕이면 봉쥬르이나 봉쥬흐로. 기왕이면 메르시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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