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못 자는 것. 침대에서 뒤척이다 힘들게 잠이 든 경험을 해본 사람은 꽤나 많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잠을 못 자면 몸과 마음이 힘들다는 것을. <잠을 못 잤다 = 불편하다> 이 공식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증상에는 정도라는 게 있다. 잠을 못 잘 때도 있지만 그게 며칠에 그치는 사람. 약국에서 수면유도제를 먹어본 사람. 너무 잠을 못 자서 병원을 찾은 사람.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몇 번 먹어봤더니 증상이 빠르게 회복되어 일찍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던 사람.
그러나 한 가지 케이스가 분명 더 있다. 나처럼 불면이 본격적인 질병이 된 사람이다. 제대로 된 처방이 없으면 잠을 아예 잘 수 없는 경우에는 '환자'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감기는 별 것 아닌 불편함으로 치부되지만 그 감기가 심각한 수준으로 변해 내내 앓아야 하는 '환자'도 분명히 있다.
'요새 잠을 잘 못 잔다'와 '나는 불면증 환자다'의 어감은 엄연히 다르듯 '가끔 뒤척여본' 사람과 '내내 불편한 사람'이 체감한 불면의 무게 또한 마찬가지다. 침대에서 가끔 뒤척여본 사람들이 해주는 말들 중에는 가끔 환자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내가 정말 많이 들어본 말 중 하나는, 몸을 피곤하게 만들라는 소리였다. 불면증 환자에게 이 말은 아무런 의미도 도움도 되지 않는 쪽에 가깝다. 불면증 환자는 피곤하지 않기에 잠을 못 자는 게 아니라 피곤해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잠을 못 자는 부류들이다. 몸을 피곤하게 만들라는 말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더 크게 겪으라는 말과 같다.
이의 연장선으로 또 자주 듣는 말은, 더 활동적이 되라는 것이었다. 아플수록 사람들이랑 더 많이 만나야지. 모임 같은 거 나가 봐. 누구라도 좋으니 만나서 얘기해 봐. 이런 말들은, 혹시나 머릿속에 떠오르더라도 그냥 입 밖으로 말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제대로 된 처방을 받지 못한 불면증 환자들에게는 충전되어 있는 에너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고로 이 말은 절대 조언이 되지 못한다. 불면증 환자에 대한 얕은 이해에서 비롯된 개인의 판단일 뿐.
이 말을 더더욱 무서운 이유는, 혹시나 정말 그렇게 시도해 보는 사람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이다. 머리는 멈춰 있고 몸만 억지로 깨어 있는 상태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다. 말을 더듬거리는 건 당연하다. 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결국 선택하는 건 침묵이다.
침묵과 더듬거림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내고 오면 엄청난 좌절감이 밀려온다.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와 같은 병증이 아닌 상태였을 때의, 과거의 나와의 비교. 서글픔과 손잡은 불안이 밀려오기 시작하면 정말 큰일이다. 불안은 불면과 아주 가까운 사이어서 더 이상 없을 거라고 생각한 새로운 최악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제안한 사람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인 사람만 더욱 고통스러울 뿐이다. 불면증 환자들이 괴로운 이유는 몸이 피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많이 안 만나서가 아니라, 이유 불문하고 잠이 오지 않아서다.
그러니 오해를 풀어주길. 불면증이 질병이 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제대로 된 처방 혹은 수면을 도와줄 수 있는 성분이 들어간 어떤 제품 같은 것들이다. 아니면 전문 심리 상담사와의 만남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같은 전문성이 입증된 무언가라는 걸 꼭 알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