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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환자가 유럽에 살 수 있을까?

by 이진리

2025년 3월 27일 현재, 나는 두 가지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다. 첫 번째, 불면증을 떨쳐내기. 두 번째, 끈질긴 생명력 갖기.


내가 생각하는 끈질긴 생명력이란 언제, 어디서, 어느 상황에서든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있는 힘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더 인정받기. 그럼으로써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기. 이런 것들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체력도 필요한 법. 근력 운동과 스트레칭을 병행하며 내 몸을 케어하기. 이런 것들이 내가 말하는 끈질긴 생명력들이다.


나는 얼마 전부터 유럽이라는 나라와 사랑에 빠진 상태니, 이 끈질긴 생명력이라는 희망 안에 '이국의 어디서든 잘 살아남기'라는 요소를 넣어두었다. 이국에서 잘 살아남고 싶다는 것을 조금 더 풀어써 보면, 한 마디로 유럽의 한 나라에 오랫동안 머물러 보고 싶다는 의미와 같다.


내가 지금까지 유럽에 머물러본 기간은 고작 6일. 그 짧은 기간이 내내 즐거웠기에 혼자 멀리 떠난 여행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다. 문제는 감질맛만 남았다는 것이다. 파리 여행 일정이 더 길었다면 어땠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얼마 전, 쓰레드라는 SNS를 시작했다. 나는 주로 유럽 여행과 영어 공부에 대한 글을 많이 올렸기에 피드 또한 자연스럽게 내 관심사에 맞게 설정되었다. 그리고 나는 쓰레드에서 생각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서 잘 살아남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워홀, 해외 유학, 취업 형태로 유럽에서 머무른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현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려 그곳에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 해외에 체류하는 사람이 많다는, 머리로는 알지만 체감까지는 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실시간으로 보게 되니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점을 뼛속 깊이 체감하게 되었다.


체감한 것과 체감하지 않은 채 머리로만 알고 있는 건 천지차이다. 체감하게 된 어떤 것들은 내 머릿속에서 실제화된다. 그리고 만약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그 실제화된 것에 나를 넣어보기도 한다. 내가 만약 해외에서 오랫동안 머무른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문득 떠올린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무비자로 머무를 수 있는 기간 내내 프랑스를 여행한다면 어떨까? 하지만 상상은 꼭 '나래'만 가져오는 건 아니다. 두려움도 같이 가져다준다. 이를 테면 90일 내내 호텔에 머무른다고 치면 대충 어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할까? 높은 유럽 물가와 경제적 상황을 맞물려 생각하다 보면 결국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통장이 곧 텅장이 될 거라는 슬픈 자각뿐이다.


그렇다면 체류 기간을 좀 줄여볼까? 한 달을 머문다고 치고, 최대한 저렴한 에어 비앤비를 구해본다면?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나면 그다음으로 넘어가기가 쉬워진다. 나는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프랑스를 어떻게 즐길 것인가? 소도시들을 왔다 갔다 하며 프랑스 곳곳을 누빌 수도 있고 한 곳에 진득하게 머무르며 현지의 분위기에 동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쓰레드를 통해 프랑스의 민낯도 생생히 알게 되었다. 느린 행정 처리, 예약 잡기 힘들기로 유명한 병원 등등. 불면증 환자는 병원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약국의 도움만으로도 충분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병원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유럽여행 늦바람이 난 지금. 언젠가 꼭 한 달 살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기에 (혹은 한 달 이상도 좋다) 내 마음은 결국 나의 첫 번째 희망사항인 '불면증을 떨쳐내기'로 다시 향하게 된다. 요즘 나에게 있어 불면증은 적도 아니고 장애물도 아니다. 약간 서먹한 친구 정도다.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진 그런 상태.


아직 나는 워킹 홀리데이를 가본 적 없다. 인생에서 한 번만 가능하다는 그 기회가 남아 있는 거니 해외에 오래 머물러 보고 싶다는 상상이 상상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불면증이 내 발목을 잡고 있긴 하지만 불면증 환자라고 해서 미래를 못 그리는 건 아니니까.


직항으로 약 14시간 정도를 날아가야 하는 어느 먼 유럽. 한국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제2의 고향이 생긴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그곳은 어디가 될까?


이쯤 되니 다시 한번 의지를 다잡게 된다. 불면증? 까짓 거 꼭 이겨내고 말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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