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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zam Nov 19. 2019

000. 텁텁한 사람의 희희낙락

텁텁한 사람의 희희낙락

무색무취의 누군가는 어딘가 끌리는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했다. 그는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보다도 타인이 무얼 좋아하는지를 더 알고 싶어 했고, 본인의 타깃이 된 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려 했다. 이처럼 학습된 취향이 쌓이면 결국 그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좋아할 수 없는 텁텁한 사람이고야 만다. 



대체로 취향은 한 사람의 여러 면을 잘 나타낸다. 따라서, 개인의 취향들을 조합하면 그 사람을 이루는 면과 면을 앞뒤로 뒤집어가며 볼 수 있고, 그를 입체적으로 조립하게 된다. 그러니, 이렇다 할 취향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분간하기 어렵다. 취향은, 그러니까,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에 온 마음을 쏟는 것이다. 적당한 마음은 적당히만 하므로, 적당히 좋아한다는 것은 취향이라 불릴 수 없고 단순한 선호일 뿐이다. 유의해야 할 것은 좋아하는 마음에 진심이 담기지 않으면 티가 나기 마련이다. 고로, 만들어낸 취향은 어설프다.


고가의 브랜드를 좋아하는 친구는 언제나 에르메스, 샤넬, 까르띠에가 어쩌고 저쩌고. 만나기 전부터 앞으로 듣게 될 얘기를 늘 예측할 수 있었다. 예전 S백화점 면접 준비를 하며 알게 된 브랜드들과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수박 겉핥기식의 지식으로 이 분야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던 터라 맞장구 정도는 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것도 내 나름의 능력이었던지, 그 친구는 내게 "벨라는 왜 이렇게 잘 알아?"라고 물었다. 사실 나는 쥐뿔도 모르니까 그 질문에 어버버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면허도 없는 뚜벅이는 장인들의 노고가 섞인 대단한 가죽가방 보다는 가벼운 에코백을 좋아했지만, 꼬부랑 브랜드들에 눈과 귀가 알맞게 절여졌을 때쯤 내 취향이 촌스러울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되었다. 이런 류의 쇼핑에는 약간의 관심조차 없었던 내가, 신상들을 죄 꾀고, 가방이며 액세서리며 하나둘씩 사들였다. 그럴수록 이 주제의 대화들에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게 되었지만, 그다지 관심도 없는 것들을 취향인 양 읊고 나면 머릿속이 뒤엉키며 스스로가 짠해졌다. '너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타인의, 타인에 의한, 타인을 위한 취향이 아닌, 오롯이 나의 취향에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때쯤이었다. 속사정을 알턱 없는 누군가의 취향에 조곤조곤 맞춰 산다는 것은 모래성에 공을 들이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것이다. 모든 일상에서 그만의 취향의 포인트를 찾을 수 있을 테니, 텁텁한 사람은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구분해보기로 했다. 이로써 그를 이루는 면면들을 다듬고 칠하여, 입체적으로 조립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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