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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zam May 10. 2020

Round 1. 발견과 합리화

갑상선에 큰 혹이 있다. 의사 선생님 세 분이 초음파 사진을 번갈아 보며 크기에 놀란다. 이게 어떤 병인지, 어떻게 되는 병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는 혹이 크다고 할 때마다 슬프다. 조직검사를 예약해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두려움은 차오르고, 눈물은 줄줄 내리고.



손가락 바삐 이것저것을 검색해보다, 몇 가지 사실에 의외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1) 우선, 갑상선의 혹(이하. 갑상선 결절)은 꽤 흔한 질병이다. 넉넉 잡아 성인의 50% 까지에서도 발견된다고 하니 동전의 앞과 뒤를 점치는 것만큼이나 랜덤하다. 나의 경우는 크기가 큰 편이라 수술이 불가피하겠지만 흔한 병이라는 사실은 매우 위로가 됐다.


(2) 그간 단순히 체력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일상의 불편함들이 갑상선 이상에 따른 증상임을 알게 되었다. 극심한 피로감, 붓기, 호르몬 불균형 등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자질구레한 것들이 개선되면 매일의 수고스러움이 덜어지겠다는 생각에 희망적이다. 그간 내가 집순이로 살았던 것은 나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갑상선이 이유였던 것은 아닐까.


(3) 어쩌면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요즘 가족들이 나를 안쓰러워한다. 휴일의 아침, 아빠가 청소기를 돌리실 때, 침대에 더 누워있어도 될 면죄부가 생겼다.


다행하게도 크게 아픈 곳은 없다. 신체적으로 어떤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면 두려움이 커졌을 것 같아 이 정도면 감사하다고 생각되었다. 병원을 꺼리며 습관처럼 내뱉은 ‘젊음’은 더 이상 충분한 핑계가 되지 못하게 되었다. 다 낫고 나선 젊어서 건강한 게 아니라 건강하게 젊은 사람이 되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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