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블레드 호수는 마치 동화 속 세상 같았고, 류블랴나는 유럽 감성의 그 자체였다. 저녁을 여유 있게 먹고, 류블랴나의 거리를 산책까지 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면 아주 완벽한 여행이 아닐까 싶었다.
정말 상황이 바뀌는건 순식간이었고, 그 시간은 단 1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갑자기 직원이 8시에 손님 예약이 있어서 정리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서 그래 밥 먹는 거치곤 오래 있었지라며 흔쾌히 알겠다고 일어섰다.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아서 돌아가는 일정을 변경해 볼까라는 마음에 버스앱을 켰는데, 보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명 내가 예약한 버스는 21시30분 버스였다. 메일로 온 것도 확인을 했기 때문에 틀림이 없었는데, 갑자기 시간은 4시 30분 버스로 변경되어 있었고, 연락은 메일로 변경통보였고, 이유도없었다.
물론 사정에 따라 지연이 된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이미 출발시간이 지나버린 버스 티켓이 되어있는 게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왔다. 오늘 무슨 날인가 싶을 만큼 나 뭐 잘못했나..라는 생각에 다시 예약 메일도 확인을 했다.
그 순간 많은 생각들이 거쳐지나 갔고,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화를 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금 시각 8시 3분을 지나고 있었고, 앱을 확인했을 때는 8시 25분 차를 제외한 모든 버스가 매진이었다.
22분 만에 버스승강장까지 가야 하기에 어리버리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조금전만해도 산책까지 생각하던 여유로운 나에서 갑자기 미션을 완료해야 하는 전투모드의 나로 바뀌어갔다.
지도로 길을 찾고 걸리는 시간은 15분이었고, 열심히 눈길을 뛰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은 8시 23분이었고, 오전처럼 표를 예매하고 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까 봐 혹시 몰라서 버스표를 예매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티켓을 예매하기 전에 혹시 몰라서 버스 정류장 앞에 가서 기사에게 물었다.
"나 자그레브에 갈 건데, 티켓 있으면 탑승할 수 있어?" "응 예약된 티켓 보여줘"
대답을 듣곤 그 자리에서 8시 25분 버스표를 예매하고, 버스에 탑승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너무 뛰어서 숨이 모잘랐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숨을 고르면서 버스에 늘어졌다.
무사히 있는 버스를 타긴 했지만 플릭스버스 회사 때문에 난 자그레브로 돌아가지 못할 뻔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정말 천운으로 저녁식사하는 곳에서 8시에 예약이 되어있으니 정리해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류블랴나에서 1박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것이다.
환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급한불은 해결해서 자그레브는 갈 수 있게 되었다.
오늘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천국과 지옥을 번갈아 가는 기분이란 마치 '어서 와 이게 유럽이야!' 하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오늘 겪은 일들은 3달간 유럽여행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단 하루만에 겪었고, 그 당시에는 이게 바로 유럽식의 신고식인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