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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Mar 02. 2024

EP14.한번 보고 자꾸만 봐도 생기는 멍청비용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수 없이 많은 변수가 발생하는데, 그중에서도 상황이 어쩔 수 없으면 모르지만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 생기는 이른바 '멍청비용'은 온전히 나의 탓이었다.


잘츠부르크에서 자그레브로 돌아가려고 플릭스버스를 예매했고, 시간도 넉넉하게 저녁 늦게였기에 산책도 하고, 음악도 들으며 잘츠부르크의 마지막을 한껏 즐겼다.


이제 버스를 타러 가려고 트램을 탑승했는데, 뭔가 불안하게 플릭스버스에서 메일이 왔다. 버스가 지연이 되었다는 메일이었는데, 지연되었으면 더 여유가 생겼네 하고 '뭐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으로 기다려야지라고 생각했다.


메일을 보고 나니 갑자기 뭔가 싸한 느낌이 드는 그런 순간이 딱 그때였다.

메일을 보니 시간 9시 30분으로 지연되었음이라는 문구가 있었고, 내가 생각한 버스의 시간은 9시 50분이라고 알고 있었다.


일찍 출발해도 도착하면 30분이었고, 그때부터 어떻게 하지 이걸 못 타면 그 이후에는 버스가 없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며 꼭 타야 한다고 생각하며 뛰어서 트램을 탔다.


운이 좋으면 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간절하게 바랬다.

트램이 갑자기 멈춰서 갈 생각을 안 해서 초조한 나는 제발제발을 외쳐댔다.


그렇게 28분에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플릭스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정말 휑하니 아무도 없었고, 방금 막 잘츠부르크에 도착한 여행객들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버스가 막 떠났다며 나를 안타까워하던 외국인들을 마주하니 현실이 직시되었다.


현실은 버스를 놓쳤고, 그래서 돌아갈 수 없었다는 것 그다음 버스는 새벽 5시는 되어야 있었다.

그다음 날 바로 일을 해야 했기에 미안한 마음으로 휴무를 하루 더 연장했는데 그거보다 큰 일은 당장 숙박을 할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핸드폰도 잘 터지지 않아서 정보를 알아볼 수 조차 없어서 국제미아가 이렇게 되는 건가 싶었다.

일단 와이파이가 되는 잘츠부르크 중앙역을 트램을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와이파이가 되는 공간에서 숙소를 찾아보니 이미 늦은 시간이라 체크인되는 곳이 많지 않았고, 3~4시간 있다가 나와야 해서 숙박을 하기엔 애매했다.


그렇게 시작된 해외 첫 노숙이었는데, 안전이 확보되지 않아서 불안하고, 무서워서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기차역 화장실은 50센트를 내고 들어 갈 수 있는 안전지대였다.


일단 화장실에는 돈을 내고 들어와 야하기 때문에 안전했고, 남자들도 들어올 수 없었기에 그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일단 50센트를 내고 들어갔는데, 화장실이 엄청 깨끗한 데다 한 칸 한 칸 굉장히 넓어서 이 정도면 버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날의 날씨는 기온은 2도였으나 새벽이 되니 영하의 날씨와 비슷했기에 감기가 걸리지 않으려면 옷을 여러 겹 껴입어야 했다.

처음엔 관리하는 사람들이 와서 쫓아내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도 있었는데, 잠깐 눈을 붙이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 하며, 3시간을 버티고 버텼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의 노숙경험은 정말 치안이 나쁘지 않은 오스트리아여서 가능했고, 또 선택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 밖에 생각이 안 들었다. 다음부터는 꼭 학인을 하고, 또 하는 버릇을 들이자고 다짐은 하지만 멍청비용은 언제나 생각지 못한 곳에서 발생한다.


여행을 하면서 한번 보고 자꾸만 확인해도 생기는 멍청비용은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여하고, 그에 따른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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