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았던 적이 전혀 없었다면 살아있을 수도 없다

살아있다는 것이 바로 사랑받았다는 증거

by 양별

우리 부모님은 내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누군들 내가 원하는 사랑을 줄 수 있었을까. 내가 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참 한도 끝도 없었으니까.


내가 원하는 사랑은

나의 모든 질문에 대답해줘야 했고

살이 쪄도 예쁘다고 해야 했고

공부할 때 방해하지 않아야 했다.


우리 부모님은 그렇지 않았다.

나의 질문에 ‘사전 찾아봐’라고 대답했고

살이 찌면 정직하게 ‘살쪘네’ 알려줬고

공부할 환경을 만드는 나를 유난 취급 했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내 셀카에 예쁘다고 해주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빈 말로는 예쁘다는 말을 절대 해주지 않았다.


어릴 때는 내 방식대로 사랑해주지 않는 것, 그게 그렇게 서운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걸.


사전 찾아보라고 대답하던 그때 부모님은 딸 셋 입에 풀칠하느라 바빴고,

살쪘다는 말 뒤엔 ‘그래도 예뻐’라는 말이 숨겨져 있었으며 (자세히 들으면 들린다)

좁은 집에서 갓 중학생이 된 단 한 명을 위한 환경을 만들기도 쉽지 않았고,

셀카보다는 실물이 더 예쁘다는 뜻이었다는 걸.


우리 가족은 내가 암 치료를 받을 때, 누구보다도 나를 아껴주고, 챙겨주고, 묵묵하게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런 사랑을 받은 내가, 어떻게 그 마음을 모르겠는가.


그래서 내 공허함을 부정하고 싶었다.

이제는 사랑받는다는 걸 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 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냥 쓰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남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내내 연기인데 혼자 쓰는 글까지 꾸며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더는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조심스레 고백해 보자면, 내 가슴 한편에는 오래전부터 구멍이 하나 뚫려있다.

그 사이로 찬 바람이 드나들고, 그 주변으로 찬기가 스멀스멀 배어든다. 가슴부터 퍼진 찬기는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 심장에서 가장 먼 발가락 끝까지 구석구석 뻗어간다.


내가 갖지 못한 따뜻함을 가진 사람을 따라 그 옆에 머물러봤다. 그 사람들과 함께 하면 나도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뿐이었다. 수십 년 간 자리한 공허함은 그렇게 간단히 채워지지 않았다.


이 얘기를 들은 상담 선생님은 앞에 놓인 종이에 큰 원을 하나 그리고, 그 안에 훨씬 작은 원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말해주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비어있는 작은 원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허함을 채우려고 그 작은 원만 바라본다. 하지만 그 옆을 보면, 채워져 있는 나머지 공간이 훨씬 크다.


일례로, 갓 태어난 아기가 어떻게 혼자 자랄 수 있겠는가. 부모는 그 아이를 수천 번을 먹이고 안고 눈 마주쳐야 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이 바로 사랑받았다는 증거다. 사랑받았던 적이 전혀 없었다면 우리는 살아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 공허한 작은 원보다, 내가 당연시해 온 더 큰 원, 지금껏 받아온 사랑에 집중해도 좋다.


그럼 지금의 공허함은 어떻게 채울까.

다양한 분야로 채울 수 있고, 그래서 취미가 필요하다고 한다. 솔직히 그거면 정말 괜찮을지 자신은 없다. 난 원래 취미가 많은 걸. 그렇지만 믿어보는 수밖에.


우선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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