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혁 Jul 16. 2023

작은 진실들

not impossible but improbable

뜨거운 A와 차가운 B가 만난다. 열은 뜨거운 A에서 차가운 B로 스며드는 것처럼 관찰된다. 그러나 차가운 B에도 열은 있었다. B보다 많지 않았을 뿐이다.


통계 열역학에서 볼쯔만은, 차가운 B의 열이 뜨거운 A에게 스며드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럴 확률이 낮을 뿐이라고 정돈한다.


이 관찰의 듀얼리즘들을 확장해 본다.

샘플의 숫자가 적은 이벤트 공간을 생각해 보자. 5개의 리셉터 중 열파켓 3개를 지닌 A와 5개 중 1개를 가진 B를 가정하자. 여전히 A는 B보다 뜨거운 쪽으로 측정된다. A와 B가 함께하면, 파켓들은 AB의 합일체에 균일하게 퍼진다. 이때, B에 있던 한 개의 열파켓은 A의 어느 부분의 리셉터로 볼쯔만의 확률로 스며든다.


이제 A와 B의 리셉터 숫자를 5백억 개로 확장하자. A에는 3백억 개의 열파켓과 B에는 1백억 개의 열파켓이 존재하며 서로에게 스며들며 1천억 개의 AB 리셉터들에 균일하게 퍼져 나간다. 인식론적 관찰은 뜨거운 A의 열이 차가운 B에 스며든 것이 진리가 된다.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A와 B의 파켓 차이인 2백억 개는 볼쯔만의 확률(probability)보단, 듀이의 확신(assertability)에 객관성을 주게 된다.


허한 B의 냉기를  A의 열로 온기의 평등을 목적지향으로 보았다면, 듀이는 이 관찰의 결과를 조건부 진리라 했을 것이고, 볼쯔만의 확률은 단지 듀이의 수단적 지식이 될 뿐이다.


작은 진실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는데, 객관성과 일반화에 중독된 인식론자는 그것들을 도구로 이용하고 용도가 만료되면 잊어버린다.


자신만의 촉과 합목적성에서 멀어진 진실들은 볼쯔만의 숫자만큼 위로를 받을 뿐, 진리가 되지 못한다.


세상이 잔인하게 아니라, 작은 진실들의 존재 확률이 볼쯔만의 수치만큼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확률이 적어도 가능한 곳에 우뚝 서는 마음은 아름답다. 그러나 인생은 그런 아름다움에 아무런 채무적 의무감을 강요하지 않는다.


듀이의 목적성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상황적 조건부 신념들은 문명을 번영시켰다.


사람보다 비열한 존재는 숲 속에 없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