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혁 Jan 22. 2022

위대한 착각

the greatness of delusion

2백만 년 전, 번개맞은 나무에 붙은 불은 귀청을 흔들던 벽력의 노여움이 형체로 나타난 것이었다. 함부로 쳐다보지도 못했고, 만지면 늑대의 이빨에 살가죽이 벗겨지던 고통을 주었다. 어느 겨울밤, 폭풍의 번갯불 불씨 몇 개가 동굴로 날아들어왔다. 불씨는 추위를 막아주던 마른 나뭇잎들에 옮겨 붙었고, 삽시간에 큰 불이 되었다. 공포에 질려 대부분 날렵하게 동굴 밖으로 빠져나왔다. 다리를 다친 몇 남자들과 어린 젖먹이들을 챙기던 여자들 그리고 이글거리는 불의 형상에서 유추된 환영의 착시에 굳어 버린 몇 명의 남녀들은 입구의 불에 막혀 동굴을 미처 빠져나가지 못했다. 동굴 밖으로 빠져나온 사람들은 밤새 얼어 죽거나, 늑대들에게 잡혀 먹혔다. 동굴 속의 사람들은 불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면 고통 없이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에 그을려진 검은 날고기를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다. 임박한 죽음에 뿜어진 아드레날린은, 동굴 속에 머무는 신비한 온기와 익은 고기의 맛에 잊혀져갔다. 잿더미 속에 그을려진 날고기들은 며칠이 지나도 썩지 않았고, 탄 나뭇가지를 암벽에 그을 때마다 검은 자국들을 남겼다. 썩지 않는 고기 덕에, 사냥을 자주 할 필요 없어진 사람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불의 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려움을 너머 늑대보다 강한 신비로운 힘을 벽에 그려보며, 그 온기와 익은 고기의 맛을 떠올렸다. 다쳐서 사냥을 자주 못한 사람들 중 살아남은 몇 명은 허기에 강했다. 적게 먹었지만 몸은 야위지 않았고, 근육을 가려주는 두터워진 피하지방은 추위를 견디게 해 줬다. 불씨는 마른 나뭇가지와 잎을 던져 주면 계속 살아났다. 위험한 사냥은 줄어들고 불씨가 남은 동굴 속에 머무는 시간은 차츰 길어졌다. 멀쩡한 남자들이 사냥 후 돌아와 여자들과 욕정을 풀었다. 그들이 다시 사냥을 나가면, 다쳐서 사냥을 못하는 남자들은 불이 꺼지지 않게 계속 나뭇가지와 마른 잎들을 동굴 주변에서 주워 모았고, 그들에게도 욕정을 풀 기회가 주어졌다. 멀쩡한 남녀들의 행위를 같은 동굴 속에서 바라만 보아야 했던 다친 사람들은 상상으로 자신들을 위로했다. 벽에다 서로의 신체 부위를 나뭇가지로 그려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렇게 동굴 속에서 우연히 얻은 불과 함께 199만 년을 지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동굴 밖으로 나와 돌을 쪼아 만든 도끼로 자신들보다 큰 짐승을 사냥하는 방법을 또 다른 우연과 착각으로 알게 된다.



2백만 년 전의 “착각”의 사연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사람의 착각과 순간의 일탈은 문명의 존재 그 자체 속에 깊숙이 스며 있다. 100여 년 전, 우연한 실수로 섞인 불순물 때문에 전기가 흐르기도 하고, 흐르지 않기도 하는 현상의 돌이 발견된다. 실험실에서 간과된 실수를 실수가 아닌 것으로 착각을 하며 이야기는 전개되고 그것은 오늘날 반도체 트랜지스터의 모체인 접합 다이오드(junction diode)의 탄생을 만든다. 이후의 20세기는 반도체의 신화를 목격한다.



착각은 철저한 믿음의 그림자가 주는 순수한 창조의 추진체다. 모두가 그렇다고 믿는 팩트들은 현재를 지탱하지만, 미래를 위한 새로운 팩트는 순수한 일탈의 추진력이 만든 견고한 은총의 착각들이 만들어낸다. 현재를 지탱하는 패러다임에 순응하는 것은, 2백만 년 전, 동굴을 제일 먼저 뛰쳐나온 힘세고 날렵했지만 사멸했던 본능들의 흔적이다. 불을 두려워해야 했던 그들은 불의 힘을 회피하며 순연히 멸종했었다.




문명인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때는, 견고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집중을 해야 한다. 버티던 집중이 무너지며 발생하는 착각은 포기와 다르다. 그 착각은 견고하고 신성한 생존 가치의 정점이다.


과학자 앞에 놓인 풀리지 않는 문제들, 철학자의 생각을 메워버린 완벽한 과거의 철인들 그리고 예술가가 빠져든 창작 부재의 수렁들 같은 결핍들은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착각을 두려워하는 완벽주의의 흔적들이다.


우연과 착각은 2백만 년 전 동굴 밖에서 얼어 죽거나, 늑대에 잡혀 먹혔어야 할 조상에게 생존을 제공했던  문명의 아이러니한 필연이다. 문명인들은, 이러한 필연을 부정하는 시대 적응의 완벽주의를 숭배한다. 그러나 문명의 씨앗들은 위대한 착각으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호기심과 무모한 험정신의 집중에서 사리처럼 생성된다. 적응형 완벽주의와 해체적 실험정신은 각자 제철의 꽃들처럼, 자신들만의 문명적 싸이클로 하루의 해처럼 뜨고 진다.


아직도 그대는 착각이 수치스러운가?


백야드 불멍 단상



작가의 이전글 반려와 유기의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