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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혁 Jan 20. 2022

반려와 유기의 사이

욕망의 상품이 된 생명

처음엔 인형 같았다면서요

저를 득탬 하셨다고 기뻐하셨잖아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이쁘다 하셨고

비벼댔더니 소름 돕게 귀엽다고

우린 함께 먹고 잤잖아요


공원에 나가면

우아하게 발걸음 맞춰 드렸잖아요

지나는 사람들이 이쁘다며 쳐다보면

기분 좋아하셨잖아요


다른 집 개들 옆에 서 있어도

쪽팔리시지 않게 기본은 해드리려고

최선을 다해 귀엽게 살아 드렸잖아요


이 정도면 우린 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몸 아픈 날이 많아진 건

제가 뭘 잘못한 건 아니잖아요


저를 득탬 하신 가성비가

수의사 치료비로 나빠졌어도

저는 그래도 우린 이제 가족이니깐

그래도 가족이니깐..

약은 안 먹어되니깐

전처럼 함께 있어만 주시고

가엽게 쳐다만 봐주시면 안 되었나요?


보호소에 불이 나서 많은 친구들이 죽었어요

무너진 그을린 목재들 밑에 갇혔어요

아무리 짖어봐도

아무도 오질 않아요


저 문만 열리길 기도 하며 버텼어요

만일 여기를 빠져나간다면

그 동네로 가지 않을 테니

제발 이 문만 열어 주시길 기다렸어요


당신이 그렇게 좋아했던

나의 털들이 대부분 불에 타버렸고

털 밑의 살갗은 쓰라

아무리 핥아봐도 더 아프기만 해요


고 추워요

지만 아무도 오질 않아요


케이지에 함께 있던 저를 닮은 개가

어제부터 일어나 않고 잠 만 자요


배가 너무 고팠어요

썩은 냄새가 더 나기 전에 먹어야 했어요


이제 짐승으로 살아서 버텨보려는 저를

혐오하시겠네요


우린 잠깐 서로를 반려했지만

이렇게 춥고

어둡고

배고픈

케이지의 끔찍한 시간은

잔인하게 길군요


그래서 당신들은

개 같은 인생을 싫어했군요


저도 이젠

잠시 사람 같았던 제 삶이 싫어졌어요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온다면

우리 반려의 인연은 그만 되길 바랍니다


악연을 내려놓고 가는 것

적어도 그 끝은

제가 사람보다 잘하는 것 같아요


이제 고통도 배곯음도

무뎌져 갑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당신의 득탬의 기쁨

그리고 그 이후의

나의 끝돌아봅니다


당신이 나를 버렸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논리일 겁니다

나는 그냥

개처럼 살다

개처럼 떠납니다


2022년 1월 18일

유기견 보호소

화재 후 방치된 고발 뉴스를 보고


image from worldanimalfounda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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