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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혁 Jan 07. 2022

글 맛

intro/


'글'은 의식의 力動중 present state을 sampling 하여 언어로 quantize 하고 기호로 encoding 한, 영혼의 projection을 기록한 script이다.


/abstract


그래서 사람들의 글 속엔 영혼에서 projected 된 흐름이 독자의 오감을 통해 타인의 영혼과 내적 (inner product)의 연산을 한다.


연산의 결과는 영혼의 property(고유성)에 따라 매개 채널인 오감의 반응들을 다양화한다. (나는 이것을 first order stationary random process에 비유하고 싶다.) 마치 한 사람의 글이 어느 특정 주파수의 발광력을 지녔다면, 읽는 사람에겐 자신만의 고유한 프리즘이 있는 경우다. 따라서 한 사람의 글은, 읽는 사람의 프리즘 특성(unique band pass filter)에 따라 다양한 느낌의 스펙트럼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source보다 더 아름답게.. 때론 아무 빛도 통과하지 못하는 차단된 불투명한 프리즘이 되기도 한다.


글의 목적은 소통(send-transmit-receive & vice versa)이다. 읽는 사람을 전제한다.(설령 그게 자신 혼자뿐이라도) 불특정 독자의 프리즘 또한 uniform density에 잡티 없는 맑은 프리즘이라면 그 글은, 쓴 사람의 의도 이상으로 그의 잠재된 영혼의 향기와 느낌들이 전달될 때도 많다.


case 1/


한 젊은(?) 작가며 기자이신 분의 글을 즐겨 읽는다. (그분은 내가 탐독하고 가는 줄 모를 것이다) 워낙 출중한 외모에 인기도 높아 댓글들도 꽤 많다. 나는 그분의 글을 읽으면 입맛이 돈다. 시큼한 이탈리안 드레싱을 뿌린 유기농 야채의 샐러드의 신선한 맛을 연상한다. (가끔 구수한 nutty flavor도 있다) 참신하고 깔끔해서 뒤끝이 개운하다. 오늘은 그분이 색계란 영화에 대한 나름의 정돈을 올리셨다. 섹스에 대한 페미니즘의 섬세한 정돈이 인상 깊었다. 오늘의 글은 이탈리안 샐러드에 커다란 안심 스테이크를 얹은 steak salad의 향과 맛이 났다. 그런데 그 steak은 내게 너무 질기다. 아니 너무 익었다. 그래서 댓글로 "아닌데.."라고만 쓰고 왔다. 페미니스트의 눈에 비춘 남자의 성적 로망이 이리 단순화되고 질긴 스테잌으로 decimate 된 충격에.. 나름의 사색을 해봤다. 여자의 목숨과 남자의 갈비뼈가 등식으로 성립되는 게 섹스인지.. 이런 생각의 프리즘을 쓰게 만든 그분의 글은 여전히 참신하고 개운 한 건 사실이다.


case 2/


대학 선배님의 글.  많은 인문지식과 실존적 헤겔의 달인이시다. 이분의 인문적 사색의 글과 라깡의 이야기는 맛으로 본다면, 대부분 raw flavor다. 양념이 하나도 안 들어간 싱싱한 재료 그 자체다. 미국 요리문화의 핵심.. 기교보단 신선한 최상의 재료. 가끔 사진을 올리실 땐 글을 절제하신다. 이 분의 사진들은 아직 뜨거운 medium rare steak에 뿌리는 sea salt 정도다. 그런데 이분의 원칙주의와 시사성 글들은 깎아 놓지 않은 파인애플 같다. 그 속의 맛이 달콤한 줄 알지만, 껍질을 벗겨 놓지 않은 글들이다. 거친 파인애플 껍질에 안티와 네거티브도 많을 것이지만, 이분의 영혼은 그 껍질 속의 달콤한 천국의 향과 맛을 품고 있다.


/conclusion


글에는 맛이 있다.

맛은 또 다른 숨겨진 맛들을 품고 있는 recursive 한 구조를 갖고 있다.

어느 글은 너무 많은 양념들이 들어가 있지만 하나의 맛으로 느껴지지 않는 글도 있다. 그것은 무향무취의 전문 지식 서적과 같다. 어느 글은 항상 한 가지 재료만을 구워서 쓴다. 한 번은 삶어도 보고, 한 번은 튀겨도 보고, 한 번은 날로 무쳐도 보고,.. 다양한 시도가 아쉬운데 끝까지 굽기만 하는 글도 있다. 맛있긴 한데.. 짜장면만 먹으면 짬뽕이 당기는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글이다. 즉 소통을 원치 않는 자폐적 울부짖음이다. 슬픈 글도 요리하기 나름으로 다양한 오감의 채널을 자극할 수 있다.


슬픈 사람이 슬프다고 쓰는 것 

그리운 사람을 그립다고 쓰는 것

그건 글이 아닐지도 모른다.


소통을 인정하는 글들과,

정체된 감성의 자폐가 반복하는 무감의 글들..


나의 눈에도 너무 뻔하게 구별된다.

글은 글의 맛과 향으로 소통을 하는 것 같다.


싱싱한 재료가 없으면, 펜을 잠시 내리고 달인들의 글을 감상하든지, 어데든 나가서 자연 속에서 멍 때 리던지, 몸을 좀 혹사하는 노동이나 운동을 격렬하게 하던지, 그러면 빈 영혼의 냉장고에 몇 가지 재료라도 채워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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