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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혁 Jan 26. 2022

여우비

미련함의 축복

퇴근하려 나왔는데 쏟아진다

10미터 앞에 차가 있지만 우산을 꺼내기 싫다

안경에 구르는 빗방울들 붓질의 수채화가 좋다

화려하지도 않은 것견고한 투박함이던가

울긋불긋수줍음들에

미련한 여우 사랑은 눈이 부시다


온종일 모니터와 글자들에 휘어진 모가지를 펴서 하늘을 뒤져 본다

얼굴에 빗방울 좀 맞는 게 뭐가 그리 싫었던가

고개 들어 작은 것에 미련할 수 있는 오늘이 좋다

그런 나를 세례 하는 여우의 물방울들이 좋다


태고의 하늘에서 얼음 덩어리로 내려와서

티라노사우르스의 갈증을 어 줬고

요한의 세례를 치렀고

소크라테스의 햄락

로미오의 눈물

고흐의 귀에 피딱지를 남겼고

백석의 소주에 고여있던  

그 물


오늘은 내가 세례를 받았다

수억 년 썩고 깨끗해지길 반복한 그 물이

오늘은 나를 채운다


모든 사연들을 지나 온

산소와 수소들이 다시모여

오늘 이 순간은 나를 사연한다


미련한 여우의 사랑을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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