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에 영상통화 서비스인 페이스톡 기능이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나의 원가족에게 페이스톡은 거진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안부가 궁금할 땐 가끔 전화로 목소리만 들으면 되었고, 얼굴을 못 본지 좀 오래되었다 싶으면 부모님 집에서 한 끼 식사를 같이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선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일반통화보다 페이스톡을 더 자주 하는 것 같다.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는 페이스톡이 걸려 온다. 선이 사진과 영상을 가족톡방에 자주 올리곤 있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이분할된 스마트폰 화면의 반에는 엄마, 아빠, 형이 번갈아 등장하고 나머지 반에는 항상 선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늘 한쪽 눈이나 귀 정도만 걸쳐있는데, 이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얼마 전에도 엄마한테서 페이스톡이 걸려 왔다. 엄마는 화면에 등장하자마자 선이에게 할미가 팬티 사 왔으니까 할미 집에 오라는 얘기를 했다. 기저귀는 여름에 떼는 거라던 엄마는 이전에 이미 선이 팬티를 사주신 적이 있다. 그때 엄마 집에서 선이에게 팬티를 입혀봤는데 가장 작은 사이즈임에도 팬티가 커서 헐렁거렸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손바느질로 팬티 다섯 장을 줄여놓았고, 선이는 할머니가 새 팬티를 입혀주는 즉시 쉬를 했고, 나는 3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팬티 다섯 장을 손빨래했다. 다섯 장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엄마는 동네에는 작은 사이즈가 없다며, 일산에 나가 팬티 다섯 장을 더 사 왔다고, 바느질도 해두었고 빨아서 잘 말려두었으니 어서 와서 가져가라고 연락을 준 것이다.
사실 나는 선이와 말이 좀 더 통하게 된 이후 기저귀 떼는 훈련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서 당장은 선이 팬티가 더 필요하지 않았다. 엄마 집에 다녀온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 뭘 또 가나 생각했지만 솔직한 마음을 말하기에는 자꾸 어떤 손이 떠올라 그럴 수 없었다. 공룡이 그려진 아기 팬티를 고르고, 자신의 결혼 기간만큼 오래된 반짇고리를 꺼내고, 햇살 좋은 날에 깨끗이 빨아 말린 뒤 곱게 개어놓았을 손. 그 손을 천천히 움직여 페이스톡을 걸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다음에 가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보급형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엄마는 페이스톡을 할 때면 늘 소파에 앉아 있다. 카메라 화질이 좋지 않고, 창을 등지고 있는 자리라 화면에 보이는 엄마 얼굴은 어둡게 보인다. 그렇지만 며칠 후에 선이 데리고 가겠다고 날을 잡았을 때 엄마의 표정이 환해지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집에 선이가 오는 걸 좋아하는 만큼이나 선이도 운정할머니* 집에 가는 걸 좋아한다. 운정할머니 집에 가면 뭐든 실컷 먹고 마음껏 놀 수 있다는 걸 선이도 안다. 엄마는 애가 그만 먹겠다고 할 때까지 배불리 먹여야 잘 큰다고 한다. 나는 사 먹는 과일은 비싸기도 하고 과일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나지 않을까 해서 조금씩 주는 편인데, 엄마는 선이 입이 쉬고 있기만 하면 손질해 둔 과일을 꺼내 먹인다. 나는 선이가 딸기와 블루베리를 남기는 모습을 엄마 집에서 처음 봤다. 이따 밥 먹어야 하니깐 선이 그만 먹이라고 해도 엄마는 냉장고에서 떡이며, 빵이며, 우유를 꺼내 온다. 선이는 아무 우유나 잘 마시는데도 엄마는 늘 유기농 우유를 사놓으신다.
선이가 쌀통에 관심을 보이자, 엄마는 어디선가 큰 대야를 가져오더니 쌀을 쏟아부어 놀게 했다. 차르륵거리는 쌀알이 재밌는지 선이는 신나게 손을 휘저었고 그럴 때마다 쌀알은 대야 밖으로 사방팔방 튀어 나갔다. 선이는 무언가에 열중할수록 침을 흘린다. 처음 하는 쌀 놀이가 그렇게나 즐거운지 쌀이 들어있는 대야에 선이 침이 뚝뚝 떨어졌다. 뒤처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나는 그만하게 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잡곡까지 쏟아부어 주었다.
내가 ‘이거는 할머니 집에서만 가능한 놀이다’라고 하자, 엄마는 나와 형이 어렸을 때 혼자서 둘을 챙기느라 제대로 놀아주지 못하고 충분히 먹이지 못한 게 자주 생각난다며, 그래서 선이에게는 다 해주고 싶다고 엄마가 그냥 그러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가 선이를 봐주는 동안 나는 소파에 기대 잠깐 눈을 붙였다. 깊게 잠들지는 못해 엄마와 선이가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엄마가 가끔 선이를 종찬이라고 부르는 게 귀에 들어왔다. 사람 이름을 바꿔 부르는 건 엄마에겐 흔한 일이지만, 내가 반쯤 잠든 상태여서였을까. 문득, 이상한 상상이 들었다. 이 순간 엄마가 삼십몇 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의 나를 돌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반쯤 뜬 눈으로 보이는 엄마 얼굴이 어쩐지 조금 젊어진 것처럼 보였다. 다시 눈을 감으며 나는 생각했다. 선이가 나 대신 큰 효도를 하고 있구나. 이날 선이는 평소보다 오래 운정할머니 집에 머물다 돌아왔다.
*선이이게 아빠의 엄마를 운정할머니라 부르도록 가르쳐주었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라는 표현은 왜인지 서로 동등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두 분 다 할머니라 부르면 되지만 그래도 구분은 필요하니 앞에 사는 동네 이름을 붙였다. 엄마의 엄마는 양평할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