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개월 장난감 추천’
인터넷에 검색하면 ‘이걸로 아이 혼자 30분을 놀았어요’ 하는 간증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선이도 과연 그럴지, 워낙 자기 취향이 분명한 아이라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꽤 괜찮아 보이는 장난감을 하나 발견했다. ‘워터슬라이드’라는 목욕놀잇감인데, 욕실 벽에 레일을 붙이고 오리를 굴려 레일을 따라 아래로 굴러가게 하며 노는 제품이다. 선이가 평소 굴리고 떨어뜨리는 놀이를 좋아해서 거실에 있는 스탠드 에에컨에 붙여주면 꽤 잘 놀 것 같았다. 마침 ‘거의 새것’이라며 누군가 올려둔 중고품이 있어 선이를 데리고 장난감을 사 왔다.
예상대로 선이의 취향 저격 장난감이 맞았다. 레일을 붙이는 동안 선이는 이것저것 만져보며 관심을 보였다. 손에서 놓은 오리가 레일을 따라 우로 갔다 좌로 갔다 빙긍빙글 돌아 굴러내려 가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는데, 바닥에 침이 뚝뚝 떨어지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성공이다.’ 싶었다. 그런데 웬걸. 선이가 잘 놀길래 슬쩍 자리를 뜨려 했더니 나를 따라온다. 분명 엄청나게 재밌어했는데... “저거 하고 놀아”라고 하니 “아빠가 같이”하며 나를 붙잡는다. 재밌는 장난감을 갖고 놀고는 싶은데, 아빠가 꼭 옆에 있어야만 하는 아이의 마음을 아직은 다 이해하지 못하겠다. 내가 리액션이 그렇게 좋은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최근 선이는 뭐든 아빠와 같이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기차놀이를 좋아하면서도 자기가 직접 기차를 움직여 놀기보단, 내가 기차를 이어 붙이고 “칙칙폭폭 기차 지나갑니다~”하며 운전해 주길 원한다. 예전엔 내가 설거지하거나 빨래감을 정리하는 동안 거실에서 혼자 잘 놀곤 했는데. 지금은 내가 자기 옆에 있다 일어나기라도 하면 다리를 잡고 늘어진다. 잠깐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에도 밖에서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을 정도다.
이런 식의 육아는 길게 할 자신이 없어 요즘엔 하루 30분 정도 선이에게 ‘자유 놀이 시간’을 주고 있다. 자유 놀이 시간은 선이 혼자 스스로 놀아보는 시간이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볼 뿐 같이 놀거나 어떠한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물론 선이는 계속해서 나에게 무언가 어필하지만, 나는 30분 동안은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제부터 30분간 자유 놀이 시간이야. 선이 하고 싶은거 하면서 놀아. 아빠도 아빠 시간 보내고 있을게. 진짜 필요한 일이 아니면 아빠 찾지 마. 아빠 불러도 대답하지 않을 거야. 지금부터 시작” 커피와 책을 식탁에 올려놓으며 자유 놀이 시간은 시작된다. 기대하는 건 두 가지다. 첫째, 자유 놀이 시간엔 아빠가 같이 놀지 않는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선이 스스로 심심함을 달래는 길을 찾게 되는 것. 둘째, 그러는 중에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며 창의력도 자라나는 것. 뭐 조금 솔직해지자면. 나의 자유 (놀이) 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선이는 자유 놀이 시간이 시작되면 처음엔 책을 꺼내 보거나, 주방 서랍을 열어보거나,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제법 잘 논다. 하지만 5분만 지나면 “물 주세요”, “수건 주세요” 하던가 우산 꼭지를 입에 물며 나타나 내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만든다. 단호하게 “아직 자유 놀이 시간 20분 남았어. 그다음에 아빠랑 놀자” 하면, “자유 놀이 시간 끝나면 같이 놀자”하며 거실로 돌아가 다시 잠깐 혼자 놀기를 시도한다. 아직은 이런 식의 반복이라, 온전히 자유 놀이 시간이라 볼 순 없지만, 앞으로 조금씩이라도 함께 있지만 따로 보내는 시간을 점점 늘려가 보려고 한다.
밤이 되면 우리는 같이 잠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나는 항상 같은 걸 묻는다. “오늘은 뭐가 제일 재밌었어?” 즐거운 생각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러면 선이는 그날 있었던 일 중 하나를 골라 얘기한다. 어느새 이렇게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는 것이 신기하다. 얼마 전에는 “당근”이라 하길래, “선이 오늘 당근 안 먹었는데?” 했다가 곧바로 먹는 당근이 아니라 당근으로 선이 장난감 사러 다녀온 일을 말한 것이란 걸 깨달았다. 나로서는 따로 좀 지내보려 꾀를 부려본 것인데, 선이는 그 시간을 재밌었던 기억으로 뽑은 것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같이 얘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다 마지막엔 이불을 질겅거리며 선이는 잠에 든다. 그러면 잠시 감상의 시간. 잠든 아이의 모습은 언제 보더라도 정말 이쁘다. 볼을 쓰다듬고 코를 맞대고 가까이서 숨결을 느껴보길 한참. 그러고 보면 이상한 일이다. 선이가 잠들기 전에는 제발 얼른 잠들어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길 바라는데, 막상 잠들고 나면 계속 바라보고 싶고 다시 또 같이 놀고 싶어진다. 아이와 떨어져 있고 싶으면서도 함께 있고 싶은, 이런 모순된 마음이 드는 게 육아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