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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 Jun 22. 2022

마침내, 사랑의 순간을 그리다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칸 감독상에 빛나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이 의심과 애정, 집착이 뒤엉킨 감정의 포물선을 따라간다. 더없이 미묘하고 끈끈한 심리 묘사가 흡인력 있게 관객들을 스크린으로 끌어당긴다.


'헤어질 결심'이 21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인간 내면에 대한 담담하면서도 깊은 통찰과 풍부한 비유적 작법이 돋보인다. 형사와 피의자의 관계는 별 수 없이 끌리는 남녀관계처럼 발전됐다가 사그라들고, 도무지 통제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감정이 영화를 지배한다.            

[사진=CJ ENM]

◆ 박찬욱 감독과 탕웨이, 박해일이 그리는 '정중동'의 로맨스


깔끔하고 품위 있는 형사 해준(박해일)은 심한 불면증으로 평소 잠복근무를 자처할 정도다. 그는 산에서 추락한 변사체와 관련한 사건을 맡게 되고 그의 아내 서래(탕웨이)가 주요 피의자로 지목된다. 서래의 일거수일투족을 잠복하며 훔쳐보는 해준은 그의 매력에 끌리고, 믿음과 애정을 갖게 되면서 그를 용의 선상에서 제외한다. 그리고 1년 후, 서래가 다시 그의 눈앞에 나타난다.


박해일은 조금은 결벽적으로 느껴지는 품위 있는 형사 해준을 성의 있게 그려낸다. 정장에 운동화 차림, 주문 제작한 안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평상복들은 '유비무환'을 중시하는 해준의 캐릭터를 또렷이 각인시킨다. 서래를 향한 호감만큼이나, 귀하게 용의자를 대접하는 그를 향해 서래는 '품위 있는'이란 형용사를 붙여준다.            

[사진=CJ ENM]

서래 역의 탕웨이는 매력적이지만 알 수 없는 여자이자, 용의자를 빚어냈다. '마침내' '단일한' 같은 한국어가 그의 입에서 조어될 때 느껴지는 감흥이 바로 관객들에게 가닿는 서래의 인상이다. 서래는 느긋한 듯하지만 강렬하고 침착한 듯하지만 충동적이다. 서래의 캐릭터와 말투, 조어법, 그리고 선택은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결정하고 '헤어질 결심'의 뼈대를 이룬다.


 얇고 엷게 겹겹이 쌓이는 감정의 층위마침내, 사랑을 깨닫는 순간 


'헤어질 결심'에는 박찬욱 감독의 전작에서 주특기처럼 등장했던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묘하게 이끌려 등장인물들이 얘기하는 바 근처에서 서성이게 된다. 서래가 외국인임에도 주로 대사를 통해 주고받는 두 남녀의 감정, 심리묘사가 한국 관객들에게 이질적이면서도 신선한 재미를 선물한다.            

[사진=CJ ENM]

무엇보다 서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어색하지만 미묘한 한국어 표현이 일품이다. 서사가 진행되고, 전환을 맞으면서 적재적소에 놓인 서래 발(發) 대사들은 잠시 느슨해진 관객들의 정신을 일깨운다. 극 중 헤어질 결심과 함께 새로이 전환되는 서사가 조금 어리둥절하지만,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래의 존재감과 꼭 닮은 서스펜스가 완성됐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의 서사와 내용을 서래와 일치시키는 동시에, 두 남녀의 사랑의 진행은 떼어내 분리해 두었다. '붕괴'와 함께 찾아온 고백, 그리고 사랑의 순간을 '마침내' 깨달은 둘의 결말을 만나며,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과 공감 속에 놓인다. 과연 칸이 선택한 거장의 섬세한 표현과 탁월한 만듦새를 한껏 즐길 수 있다. 15세 관람가, 오는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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