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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때론 처참한 결혼의 본질

영화 '나를 찾아줘(2014)' 리뷰

by belle

영화 '나를 찾아줘(2014)'가 지독한 여성 빌런을 통해 아이러니한 결혼 관계를 들여다본다. 분명히 사랑했지만, 어느 순간 서로를 증오하고 조종하고 상처만 주며 살아간다. 결혼의 본질을 들추면서도, 통상적인 남녀 구도를 완전히 전복시켰다.


'나를 찾아줘'는 지난 2014년 개봉한 스릴러 영화다. 뜨겁게 사랑한 끝에 결혼한 두 남녀가 서로를 증오하게 되고, 각종 강력 범죄 의혹에 휘말리게 되는 내용을 그렸다. 결혼 후 전형적인 코스를 밟는 두 남녀의 모습은 익숙하지만 배신한 남편을 궁지에 몰아넣는 치밀함이 묘한 공포심과 쾌감을 동시에 안긴다. 음모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는 남편과 계획이 틀어진 아내의 마지막 선택은 혹독한, 혹은 처참한 결혼 관계의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movie_image (15).jpg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 아름다웠던 시절, 그리고 결혼…혹독한 설계자와 무기력한 남편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사라졌다. 단순 실종 사건인 줄로만 알았지만, 모든 정황 증거들은 아내를 살해한 범인으로 남편을 가리킨다. 천재 작가인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는 남편 닉 던(벤 에플렉)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설계하고, 그가 한 짓들을 되갚아주려 한다. 졸지에 아내 살해 혐의를 받게 된 닉은 진실을 밝히려 발버둥 친다. 하지만 남편을 사형수로 만들고 증발하려던 에이미의 계획이 위기를 맞으면서, 둘의 관계는 한 차례 더 전환을 맞는다.


에이미 역의 로자먼드 파이크는 아름다운 미모에 지적이고, 부유함까지 갖춘 최고의 여자를 연기했다. 매력적인 마스크와 특유의 분위기가 사랑스러운 연애시절부터, 모든 일을 꾸미는 설계자까지. 한 치의 빈 틈 없이 표현한다. 겉으로 보기에 행복했던 부부의 모습처럼, 화려한 에이미의 외모에 숨겨진 잔혹한 면모가 영화 속에서 시시각각 돋보인다. 수차례 나오는 애정신에서도 피칠갑을 한 충격적인 모습으로도, 에이미는 여전히 침착하고 아름답다.

movie_image (13).jpg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벤 에플렉이 연기한 닉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심한 남자의 전형이다. 예쁘고 똑똑한 아내를 차지하려 온갖 달콤한 말과 다짐을 하지만 결혼 후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실직하고 아내와 만난 뉴욕을 떠나 고향에 정착하고, 집과 가게를 마련해준 아내를 기만하고 20대 초반의 제자와 불륜을 저지른다. 잘난 아내와 살면서도 주제를 모르고 벌인 일들을 대갚음당하는 그의 표정은 당혹 그 자체다. 그는 아내의 치밀한 계획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 유명 변호사를 섭외해 누명을 벗을 한 방을 준비한다.


◆ 복수 끝에 남은 건 지독한 현실 뿐…최악의 여성 빌런과 관계의 전복


에이미는 작가로서 재능을 타고났지만 결혼으로 인해 모든 걸 잃는다. 커리어도, 고향도, 남편의 사랑마저도. 그런 그는 매년 결혼기념일에 하던 보물찾기 형식을 빌려, 남편에게 결혼 5주년 선물을 한다. 흔적도 없이 에이미가 사라지고, 경찰을 찾아간 닉은 세 번째 단서부터 뭔가를 숨긴다. 자신에게 불리한 불륜 행각을 숨기고, 에이미의 의도를 파악해나가던 닉은 졸지에 아내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린다. 이 모든 걸 치밀하게 설계한 에이미는, 지긋지긋한 아내 노릇을 집어던지고 은둔해 자유를 만끽한다.


극 초반부터 닉은 잘한 건 없어도 약간의 동정심을 자극한다. 누가 봐도 더 잘난 여자와 살기 위해 그가 감수해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불륜 행각까지 드러난 순간, 에이미의 참혹한 복수를 응당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찾아온다. 비겁한 이 남자는 에이미를 찾아내 모든 혐의를 벗으려 하고, 대중 앞에 서서 잘못을 인정하고 호소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행히(?) 그의 진심과는 별개로, 몇 가지 계획이 틀어진 에이미는 피칠갑을 한 채로 닉에게 돌아온다.

movie_image (12).jpg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결혼 생활 내내 잘못은 했지만, 닉이라고 행복하기만 했을 리 없다. 하지만 에이미의 귀환은 그에게 다시없을 경고로 작용한다. 급기야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 그를 보며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는 닉.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가 없다. 에이미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 서로 증오하고 조종하고 상처만 주고 있다"고 질려하는 닉에게, "그게 결혼"이라고 말한다.


결국 닉은 에이미 실종 사건 시즌2가 벌어질까, 혹시 자신도 목숨을 잃을까 굴복한다. 시시각각 무언의 협박에 시달리는 닉의 모습이 짠하면서도 묘한 통쾌함을 안긴다. 이 영화는 최악의 여성 빌런과 함께, 남녀의 권력이 완전히 전복된 상황을 그려냈다. 여러 모로 신선한 쾌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결혼의 의미를 천천히 곱씹으며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영화다. 여전히,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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