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아이템에 영혼과 스토리를 입히는 콘셉트 기획가의 역할과 역량
라이프 스타일 제안 서점 츠타야를 기획하여 성공한 마스다 무네아키의
기획에 관한 견해를 압축하여 정리한 "브런치 작가 이재선"의 일부
글을 인용하며 - <기획의 역할이 바로 간극을 줄이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것들의
속도에 맞춰
느리게 변화하는 것을
혁신시키는 것,
즉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기존의 생산자 관점과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한 마스다의 기획에 관한 생각을 보고
그동안 내가 믿었던, 그리고 해왔던 기획자의 역할과 역량은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20대라는 어린 나이에 , 사업 본부장에 제안을 받았던 나는
20대의 나이에 어울리는 아이디어는 있으나, 총 기획력과 리더십이 없는
상태에서 덜컥 본부 발령을 받고는 30일 만에 백기를 들고 부끄럽게 자리를 물러났다.
새파랗게, 정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가 판매를 늘릴 좋은 아이디어가 많다는 이유로
현장본부에 나가서는 30명의 현장 판매원들을 통솔하지 못하고 똑똑 정확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비리가 들통나는 게 두려웠던 사람들에게 지위를 거부당하는 사태가 벌어졌었다.
그 후, 우리나라 최초로 개국하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신비로의 인터넷 무료 콘텐츠 서비스 기획에
성공한 것을 발판으로
1997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우리나라 최초 온라인 유료 교육서비스 기획을 총괄하게 되었다.
그 당시 짱짱하게 잘 나가던 무료 온라인 영어교육 서비스 업체인 네오퀘스트의 공동대표 세 사람은
김영사에서 책을 시리즈로 내주며 브랜드 파워를 키워가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내가 유료 서비스를 개국한다고 하자,
우리가 성공하면 자기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다음 해 우리는 보기 좋게 성공을 했고, 네오퀘스트는 짱짱한 인력풀에도 불구하고
이름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꼭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가서 만난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분을 보고
깊은 회한만 가슴에 안고 답답한 심정으로 발길을 돌렸던 기억에 마음이 아프다.
누구든 그렇게 사라질 수 있을 테니까.
그때 창고에서, 부스러기처럼 남은 콘텐츠를 책으로 엮어 직접 포장과 배송과 개발을 홀로 하던
그 사장을 보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기에 사업을 두고 하는
장담은 바람 앞의 촛불이 영원하리라고 믿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때 기획의 핵심은 어떤 콘텐츠를 개발하느냐도 중요했지만,
소비자와의 최초 쌍방 소통을 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행동을 어떻게 예측하는가와
가상 세계에 흩어진 고객들을 어떻게 엮어서 우리 사이트를 꼭 지나가고
머물게 하는가 그리고 실물이 없는 가상 세계의 가치에 돈을 지불하게 하는가 였다.
그 당시 전화 다이얼 업 방식인 하이텔, 유니텔
통신 서비스와는 차원이 다른
인터넷 전송 방식인 56K T1라인의 속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느린, 그래서 A4용지 반장만큼의 텍스트와 이미지 딸랑 한 장을
DB에서 불러올리는 시간을 기다리는 모래시계를 수십 초간 쳐다보아야 했던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더 논란이 됐던 기억이 난다.
무엇을 보여줌으로써 로딩의 지루함을 극복하게 하는가가 사용자를 붙잡는 키처럼 보였고,
인터넷 접속자가 어떻게 매일 방문할 흥미를 느끼게 하는가가 화두였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마치 스토커처럼 추적해야만 했다.
지금은 실시간 동기화의 시대이지만, 그 당시는 1일 업데이트가 최신 기술처럼 보였다
하여, 사용자가 매일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만드는데 가장 큰 공을 들였다.
매일 들어와도 매일 새로운 재미를 보는 즐거움.
당시에는 텍스트만 사용하던 인터넷 사이트에 이미지, 만화, UX, UI 개념을 도입했다.
그때 괴짜 같던 친구 정태훈이라는 기획자가
매일 입만 열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함께 쏟아냈던 기억이 난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그 친구는 97년 그때 이미 그 친구 입에서 UX, UI가 밥알처럼 튀어나왔다.
그게 유행처럼 번진 것은 그로부터 15년쯤 지난 2012-3년도였다.
그리고 그 당시, 지금의 블로그, 브런치, 카톡 같은 메신저 기능을 모두 포함한 기능을
콘텐츠 개발자가 직접 인터넷에 글을 올리도록 개발했고, 그걸 통해 미국 저자들과의
상호작용을 위해 쌍방 데이터가 한꺼번에 저장 호출되는 메신저도 개발하여
콘텐츠 개발자가 어디서든 매일 접속하여 당일 업데이트와 토론이 가능하게 했다.
전 세계가 한 책상 위에 올라왔다는 One World를 실감하게 하는 게 바로 인터넷임을
절감하며 매일매일 세계와 사람들과 모니터 앞에서 만나는 신비를 즐겼다
그 당시 유능했던 성원영 팀장은, 기획을 해서 스토리보드를 만들어주면,
"좀 까다롭긴 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 해 볼게요." 하면, 1주-2주 만에 솔루션 앱을 만들어 주곤 했다
그 후, 10년쯤 지난 후에 엔지니어들은 말했다.
"말씀만 하십시오 다 됩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었다.
최초의 인터넷 유료 교육 콘텐츠, 최초의 상호작용 기능, 메신저 기능, 카테고리별 유저 DB 처리와
오프라인에서의 사용자 주말 커뮤티의 왕마담 역할 기획까지를 총 기획하며
3년 연속 베스트 웹사이트에, 마니아층 충성고객과 1일 유료 전환율을 4%대,
인터넷 개국을 하는 모든 사이트의 첫 화면 디폴트 아이콘 156개 사이트 제휴,
삼성전자 LG전자 컴퓨터 구매시의 바탕화면 디폴트 아이콘 탑재 판매
코리아 해럴드 무가지의 6쪽 컨텐트 중 3쪽 연재, 주요 경제 경영진 기자의 수시 취재를
통한 산업면 톱기사 장식 등을
로비비, 술대접 1원 한 푼 안 들이고 오로지 아이디어와 콘텐츠,
그리고 동료들의 열정으로만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아침마다 사이트를 방문하는 고객들의 증가 그래프를 보고
스크린에 새로 올라온 콘텐츠 접속률과 접속자의 잔류 시간의 길이를 보고,
콘텐츠가 에러 없이 씽씽 돌아가는 것을 보고 밥 안 먹어도 배부르고 행복했었다.
30명이 근무하는 벤처 기업에서 100년 기업을 꿈꾸며
하루 18시간씩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실천에 옮겼다.
밤이면 집에 갔다 오는 시간도 아까와 근처 호텔을 정기적으로 이용하며
10시쯤 호텔로 가서 샤워를 마친 후 2시간쯤 잔 뒤 다시 2시에서 새벽까지 일을 하곤
또 회사로 와서 일을 하곤 했다
그때 일하던 습관 때문에 요즘 8시간에서 10시간쯤 하는 근무가 태반을 노는 것처럼 느낄 정도다.
그 당시 인터넷 전문가가 아닌, 문학 관련 소양을 베이스로 둔 입장에서
콘텐츠와 웹 기술 등을 총괄하며
기획 , 개발 , 관리를 할 수 있었던 역량은
딱 하나 남들보다 깊이 고민하는 능력 이었었다.
당시 웹 기반 기술이 워낙 부족했던 터라 도움을 얻고자
연세대학교의 김진우 교수님( 당시 "인터넷 비즈니스 닷 컴"이라는 관련 분야 백과사전 같은 총서를 써서 많은 도움이 됨)을 찾아갔다. 노하우, 성공적인 인터넷 비즈니스를 위한 답이 있는지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 처음 하는 일이라,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여러 사람들과 매우
진지하게 고민해서 분석하고 조사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새로운 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일은 그러하다
누구도 답이 없다.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성공을 바라보는 기준, 철학, 가치에 대하여는
분명히 해야 한다.
돈을 챙길 것인지,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 것인지, 사회와의 나눔을 할 것인지
내 벤처 생활, 멋있게 기획자로 출발하여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90년대에 평균 연봉 2억대를 누리던 멋진 경험은,
그와 같은 경영에 관한 철학과 전혀 뜻을 달리하는 다른 투자자들과 마주치면서 끝이 났다.
기업 사냥과 적대적 M&A로 돈을 버는 캐피털리스트 들과 결탁한
회계사 출신 부사장의 오판이 내겐 재앙이 됐다
그리고 그 오판은 결론적으로 모두에게 재앙이 되었다.
단지 별 능력 없는 숫자밖에 모르는 회계사인 그 부사장에겐 어부지리의 공짜 잔치상이 되었다.
무능한 사람이 잔치상을 받아, 결국 그 회사는 한국의 신화를 만들 수 있는 First Mover의 꿈이
한 사람과 그 가족의 배를 채우는 식탐의 밥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회사를 100년 회사로 이끌고 싶어하는 겨우 9% 주식을 보유한
기획총괄 공동창업자인 나, 경영에 대해 뭘 잘 모르는 꿈 많고 의욕 많고
정치는 개뿔도 모르는 여자가 헌신적인 아이디어 표출과 성공모델을 만들어 내는 일은
그게 우리나라 같은 벤처 문화에서는 남의 입에 털어넣어 줄
한 입 탐욕스런 밥상 뿐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엔지니어와 콘텐츠 개발자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던 나는 ,
의심이 많은 기업사냥꾼 입장에서 보면 맘만 먹으면 알맹이를 쏙 빼내갈 수 있는
경계 1호의 대상이었고,
성공적인 모델, 안정적인 모델이 잡힌 상태에서는
바로 제거 대상이었다.
그들은 나의 파워와 영향력을 걷어내야만 했었다.
그렇게 멋지게 출발하여 인생을 다 걸 것 같았던 기획 전문가로서의 내 두 번째 삶은
수많은 교훈과 TV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수많은 반전 드라마를 남기며 마감되었다.
그 반전드라마 또한 지금의 넷플릭스 시청률을 높일 거리지만,
그건 좀 늙은 날의 취미 글쓰기 소재로 아껴 두려한다.
그 후 여러 기업의 사업 기획자 개발자로 스카우트되며 기획업무를 진행하는 동안
점점 더 기획자의 역할과 역량에 단순한 원칙을 발견하게 되었다.
"본질 통찰과 고객 자존감 살리기,
즉 사업 대상의 본질가치 통찰과 고객 주도의 가치 창출 기회를 위한 여백 만들기"
세월이 많이 지나
사업 기획의 대상이 고객의 시간, 공간, 사람 간의 행위로 확장되었다.
한 도시 시립 미술관의 건축과 프로그램 운영과, 전시 방향을 통해
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창조성과 생산성에 격조 높은 영향을 서로 교류하는 기획,
도시의 숲 전체를 Urban Park Garden으로 되돌려 자연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기획
글로벌 기업의 임원들에게 비즈니스 외의 영화 프로듀서로, 연극 제작자로 , 광고 기획자로서의
프로듀싱 경험을 응용하여 조직 전체의 프로듀싱 성과를 높이는 조직문화 기획 등등
25년간 1년에 5-6개의 새로운 사업을 각기 다른 고객 들을 대상으로 기획해 왔었다.
매번, 분야가 다른 여러 사람들과 함께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건축가, 화가, 사진작가, 음악인, 물리학자,
글로벌 기업의 혁신담당자, 공조직의 혁신 담당자 등등..
그 숱한 과정을 거치며
매번 여러 사업 기획들이, 과정, 방법론에서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공간개발이나, 도시재생이나, 사업기획이나
문화 관광 상품을 개발할 때 콘셉트 전문 기획이 중요한 까닭은”
기획의 본질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기획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종 종 차별화를 기획의 시작점으로 잡고 간다.
이럴 경우 결국 가다가 효율성과 비용 때문에 기획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혹은 포기하지 않더라도, 효율성의 이슈로 방향을 잡으면 자신들도 모른 채
소비자의 심층에 있는 욕구와의 간극이 벌어지고
차별성도 잃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세상의 모든 갈등은 이 간극-
l 공급자와 소비자]
l 트렌드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클 때 생긴다.
기획이란, 차별화가 아니라, 시작점도 끝점도 "소비자의 잠재된 절대 욕구"를
찾아내야만 감동과 마주하게 된다.
“소위 심금을 울린다”라는 감동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비자, 관객도 몰랐던 그들의 심장 저 깊이 숨어 있는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근원의 가치를 밝혀 주는 것.
이 세상의 모든 창조가들의 지향점은 바로 이 절대 욕구를 추구하는 듯 하다.
그런 기획이 되려면 기존의 관습과 구조는 신경조차 쓰면 안 될 경우가 더 많다.
때론 욕망의 성급한 완성을 이루기 위해 만든 체제와 관습에는
억압되어 숨겨졌던 인간의 욕망이 악마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걸 바 꾸는 게 기획이다.
보다 인간다운 본질적인 가치와 행복, 말하지 못한 진정한 인간의 존엄성을 찾는 그것이다
효율성과 시스템은 그다음에 생각하는 것이다.
그게 기획이다.
우리는 이따금, 기획을 하며 공급자와, 소비자의 욕구를 잘못 이해할 때가 있다
공급자의 한계에 맞춰서 비용 효율성을 따지고, 그 공급자의 한계로부터 경험되어
맞춰질 수밖에 없었던 눈높이를 소비자의 진짜 수준이나 욕망으로 잘 못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본만큼 말하는 소비자의 의견을 소비자의 숨겨진 욕구나, 눈높이라고 혼동한다.
가끔 지방 거주 주민의 눈높이가 지방 거주 공급자들의 낙후성 때문에 더 발전하지 못할 경우
그 지방의 관료, 공급자들이 갖게 되는 혼동 중에 하나가 이런 것이다.
물론 교육에 있어 지방대 소위 일류대가 아니라고 하는 학교의 교육 수준도 그러할 때가 많다
이쪽 공급자들의 말 중에 자주 듣는 말이, '우리 동네는 수준이 낮아서',
'우리 학교 애들이 머리가 나빠서'
그래서 높은 수준의 서비스나, 교육 프로그램이나, 기획이 우수한 공간,
복지 등의 서비스가 별로 필요치 않다는 말을 한다.
과연 그럴까?
요즘 같은 미디어 시대에 , 동네 수준, 정보, 지식의 한계로 욕구의 한계가 정해진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
한마디로 아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조차도 바라본 것 경험한 것만이
그 사람들의 실제 욕구를 대변하는 것일 거라는 판단은 잘못된 생각이다.
공간 소비에 있어 내 경험중 하나인 장군마을 경로당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마을정원
스타일 정할때와, 우송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창조리더십 한학기 겸임교수 사례는
내가 믿어왔던, 기획자가 할 사람에 대한 근원적인 존중과 고찰에 대한 믿음의 근거를 보여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근원적인 절대 선함과 미와 정의 격에 대한 욕구가 있다.
그렇게 태어났고 , 인간으로서의 오랜 진화과정에 축적된 DNA에,
최고의 가치를 꿈꾸는 소망이 내재되어 있다.
기획자는 그것을 찾아내거나, 소비자가 그것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결국 기획은 소비자가 가치를 생산, 창조하는 하나의 도구,
혹은 길을 닦는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그들 만의 동지감과 사람 간의 연결과 행복,
그 커뮤니티의 사회 기여와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실천까지 유도하는 게 목적이다.
기획이 이쁜 것, 튀는 것, 폼나는 것을 구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조금 감각이 있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이제는 보편화되었다.
천재적인 검색 엔진 구글을 뒤져 보면 분야별 박사 천명쯤 거느린 듯이 제공하는
정보에 그런 게 너무 많다.
그러므로 공간, 도시, 소프트 프로그램 등 삶의 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모든 활동을 기획하는 데 있어 전문기획자의 역할이 아닌
단순 디자이너 혹은 조금 감각이 좋은 작가, 혹은 조금 차별화된 무언가를
제시하는 정도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면 그것은 곧 쇠퇴할 상대적인 무엇과 마주하며
다시 또 다른 쓰레기를 양산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이런 일 들은 그 일에 필요한 깊은 내적 가치와, 관련 소비자와
관계된 주변과의 조화와 교류를 통한 2차, 3차, 그 후 지속되는 순환을 이루지 못하고
사장되거나 쉽게 쓰레기로 전락하는 일로 끝이 나게 된다.
그러므로 전문기획자는 깊이 있는 사람과 자연의 내적 가치에 귀 기울여,
그의 핵심을 끌어내는 사유와 통찰,
그것들이 다시 소비자의 언어로, 행위로, 가치로 연결되도록 표현하고.
실행되는 관계와 영향의 길을 짜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비전과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깊고 탁월한 사유와 통찰력, 그리고 그것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표현과 소통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걸 찾아내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교감 교류 통합하는 사람과 대상에 대한
따듯하고 깊은 애정은 기본 자질이다.
이 기본 역량을 통하여, 즉 기획은
그 결과가 소비자의 깊은 절대 욕구와 만나 재 창조되면서
2017. 03.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