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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랑 정원예술가 Jan 31. 2017

Windsor의 아침정원

노 정원사의  새벽정원  소설-Windsor의 아침정원 106. Evol

그녀의 일기 

'다음날 새벽 그가 영국의 아침을 보여준다며 새벽같이 일어나 Windsor성으로 날 데려갔다. 

그곳 아이리스가  핀 촉촉한 아침 정원, 작은 연못에서,

  백조가  한가로이 노는 모습을 보면

항시 내가 연상되었다면서 

그 모습을 꼭  내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살짝 안개 낀 숲, 나무 사이로 축복처럼 햇살이 쏟아져 내릴 때쯤 

우리는 윈저성 앞의 사람 하나 없는  정원에 도착했다.


이 이른 새벽 정원에  백조를 보러 오는 사람은 

우리처럼  

시간의 아픈 틈새를 헤집고 스무 시간을

날아와  딱 7일간의 짧은 생을 함께 보낸 후 

어쩜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를 긴 이별을 앞둔 사람들

 뿐일 게다.  


 내 생에 첫 번째 영국 여행을 그를 만나고픈 한 가지 열망만으로  계획했다. 

이곳에 오기 전 긴 기간 동안  

새벽이면  채 7시가 되기 전 가장 먼저 사무실로 

출근을 하면  

그로부터 온 팩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 절절한 옆서나 편지를 이미 보내 놓고는 

그 시간을 기다릴 수가 없어서 새벽녘 내게 가장 먼저 닿을 수 있는 

소식을 보내준 그의 편지를 맞으러 

나는 새벽 6시에 출근하는 충성스런 직원이 되어 있었다.

 

팩스는 얼핏 보면  일상의 소식 같아 보였지만,  그가 전하는 특별한 의미를 

읽어 낼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 들이었다.

 때론 영국의 아침 안개 이야기, 

때론 학교 작은 성당에서의 대학생 음악회 이야기, 

때론 닥종이 작가 김영희 씨의 음악 이야기,

그가 홀로  읽은 시 이야기 등등 


마치 팩스로 보낸  감열지의 검은 글자들이

 한 글자씩 날아올라 내 귀에 속삭이듯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작품 출처: haslehust-ernest-william-1866-1949-1274-windsor-castle-from-the-thames-wc-14-x-20-ins


그렇게 1년을 보내다, 

그가 보낸 한 장의 가상 이야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 만일 당신이 내게 온다면'..

으로 시작한 그의 이야기는 

" 만일 당신이 내게 온다면 새벽 윈저의 아침 정원을 함께 산책하고, 

낡은 성으로 올라가 오래된 이야기를 듣고"

 등등 그렇게 그들이  함께 영국에서 보낼 수 있는 멋진 가상의 이야기였었다.


 하지만 삶은 때론 정말 가혹하다. 

시간은 그들의  틈을 한치도 허락하지 않고 붙잡아 두기로 한 듯 해 보였다


 나는 새벽 7시부터 밤 10시까지 무섭게  집중하며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시비 걸기 좋아했던 나의 상사는  속도 모르고  

내가 속도를 내어 일처리를 하면 할 수록 

그위에 더 많은 프로젝트를 얹어서 신기록을 세우려는 듯 보였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의 주문을 들어주다가,

 한달을 남겨두고 막판에  할 수 없이 강 부장을 찾았다. 

windsor-castle-tony-williams


도대체 내가 한 달 동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어디까지인지 알아야 했다.

 그의 중재로 한 달간의 일을 3주 안에 끝내는  조건으로  

10일간의 휴가를 얻어 내기로 했다. 


그 조건은'K 자동차 서비스'를 위한 신규 프로그램

하나 개발을 완성하고 파일롯 테스트까지 끝내서 매뉴얼까지 완성하는 거였다. 

평상시 두 달 걸려 하던 일이 왜 갑자기 한 달로 그것도 3주로 끝내야 하는지 ,

신은 무슨 심통 이신지 

그렇게 게임을 걸어온 온갖 것들에게 보복이라도 하듯 

일을  끝내고 결국 나는 영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이렇게 새벽 정원을 맞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우리가 천국의 문 앞에 서 있는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 정원으로 들어가려 했다. 

헉, 문이 닫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개장 전이다.

그 때 작은 쪽문 쪽으로 작업복 차림의

 노인 한분이 정원관리용 장비를 들고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다가가서  들어갈 수 없는지 물었다.

The Royal Collection © Her Majesty Queen Elizabeth II

Windsor Castle Peter Packer


아직 개장 전이라 했다  우리는  저 먼 동양의 코리아에서 왔는데 ,

 딱 이 새벽 정원을 보고 싶었노라고 이야기했다. 


당신이 가꾸는 그 아름다운 정원을 보기 위해  왔노라고.. 

노 정원사는 빙그레 웃으며 길을 내  주었다.

우리의  아름다운 사랑이  부럽다며 행복하라고 축원까지 해주며 길을 내어 주었다. 

촉촉한 흙을 밟으며  정원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이 아침에 한 세계를 오롯이 우리 만을 위해 허락받은 듯이 우리는

우리만을 위해 마련된 그  낙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뭇잎에 촉촉이 맺힌 이슬이며, 아이리스 잎새를 따스히 비추며 떠오르는 햇살이 

모두 우리만을 위한  새로운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황홀했다.


우리는 고백하듯  되뇌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아침이 우리에게 다가 오다니'

나의 허리를 휘감아 들어오는 그의 팔이 따듯했다.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그의 가슴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을 맡으며 

구름 위에 떠서 흐르는 듯 정원 속을 걸어 들어갔다. 

맑고 흰 셔츠 천의 미세한 구멍을 뚫고 그의 달착지근한 살 냄새가 풍겨왔다. 

비로소 우리의 사랑이 살아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야 우리는 함께 있는 것이다.

그 애타던 시간들의 기다림의 끝에..

Ev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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