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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랑 정원예술가 Jan 02. 2018

인  연

초록 빛 경계와 꽃에 대하여

빛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어둠속의 산책을 위해

그녀는 후드가 달린 폭이 넓고 따듯한 베이지색 캐시미어 코트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검은 니트 바지에, 검은 앵글 부츠를 신고, 캐시미어 검정 폴라티를 입고

적막속에 잠긴 산사를 찾아갔다.  새해  기원을 마친 신도들과 여행객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절 마당엔  하루 이른 보름달이  늙은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오며

주춤 거리고 있었다


코트 앞 깃을 연 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빙빙 맴을 돌며 하나 둘 하나둘 마당에

돌조각을 세어 본다.  법고를 마친  스님 하나가 법당문을 열고 들어가다 흘깃

쳐다보더니, 이내 문을 닫고 들어가 목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연이어 다른

2개의 작은 누각에서 역시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 읽는 소리가 퍼져 나오기 시작

했다. 음을 맞추지 않은 3-4명의 남성 독경소리는 책을 읽는것인지, 기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게 건조하게 갈라지며 땅바닥에 툭툭 떨어져 내렸다.


달은 스프링에 눌려 퐁퐁 솟아오르듯 자꾸 하늘로 높이 높이 올라가고  나무가지에

툭툭 떨어지는 차가운 달빛은 얼치기로 가지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한채 숨을 몰아쉬고

있다

나뭇가지에 걸린 달빛을 끌어내려 샘으로 흘려 보냈다 차가운 겨울물에 파르르 떨던

겨울 보름달은 이내 산산 조각으로 찢어지며 바위끝을 따라 흐르다 다시 돌아 오고,

다시 돌아 오곤 했다.


그와의 인연도 그러했다. 처음 사람의 인연 인줄 알았다. 형체가 견고히 손에 잡히는

사람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휙 다시 돌아왔다간, 다시 흔적없이

사라지곤 했다. 그리곤 하나씩 하나씩  초록 빛 길을 내어주곤 했다.

그 길이 열릴 때마다 그녀는 희고, 붉고, 파랗게 아름다운 색색의 꽃들을 심어 나갔다.

그러다 어느새 천지에 화사한 꽃들 가득 피어난 꽃동산과 호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색은 어둠을 벗삼아 떠오른 달처럼 짙고 깊은 아픔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 어둠을 이겨낼, 그 짙은 아픔을 밀어낼 유리벽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유리벽 안에

초록의 작업을 계속해야 했다.

달빛 아래 언 땅을 밟으며 그녀는 절마당을 아다지오의 가락으로 거닐고 있었다

이젠 목탁 소리도 멈추고, 초저녁을 위로받던 이름모를 사람들도 돌아가고 마당 가득 달빛만  

차가웁게  떨어지고 있었다.


사방은 고요하나, 속마음이  시장통 속 같아 그녀는 비우고 또 비우며 마당을 돌고 있었다. 절집

관리인은 사람을 보지 못한듯 그림자 처럼 마당을 가로질러 산방쪽으로 사라진다.


소나무에 걸린 달빛이 이젠 줄기를 타고 올라가  학처럼 솔가지 위로 날아갈 참인 듯 했다.

그 달빛마져 어수선하여 다시 달을 등지고 어둠 속을 걷는다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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