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제시하자면, 지역은 분명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단위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인근 지역에 존재하지 않는 국가들의 역학이 강하게 남아있는 지역일수록 지역 단위는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단위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견해로써 국제관계의 변수로 “지역”이 강하게 작용하기 위해서는 국가 내부에 습속과 합리성(reasonable)이라는 씨줄과 날줄로 엮어진 시민사회라는 그물망이 촘촘해야 하거니와, (주제를 막론하고) 국론을 통일시켜야만 한다는 국가주도의 편향성의 동원(mobilization of bias)으로 교조적인 이념적 인식틀 가진 채 특정 국가에 대한 호오(好惡)를 표출하는 방식은 지양되어야만 “지역”이라는 개념이 정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1990년대 초 당시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과 같은 국가주도의 외교정책과 불곰산업을 위시한 상위정치(high politics)에서의 교류가 곧 하위정치(low politics)를 자연히 촉발한 사례도 있지만, 상위정치로 시작된 이해관계는 냉혹하며 합리적(rational)이다. 안미경중으로 2010년대 초중반까지 중국 열풍을 맞이했던 한국이지만, 박근혜 정부 당시 사드배치와 한한령(限韓令)으로 인해 중국과의 문화적, 인적 교류는 급속히 냉각됐다.
한편, 하위정치(low politics)를 국가가 주도하는 형식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분명 근대 주권국가체제가 정립된 오늘날에 있어, 처음의 물꼬를 틔우는 역할은 국가가 주도할 수 있다. 가령 참여정부 동안 일본 대중문화를 정식으로 수입 허용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색된 양국 관계는 부드러워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하위정치는 엄연히 각 국가별 시민들이 국제결혼과 같은 밀월관계(Honeymoon Relationship)를 비롯한 사회적 교류로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뤄져야만 한다.
영국과 미국의 평화로운 패권이양이 달성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이 지닌 어떠한 예외성(Exceptionalism)이 아닌, 미국 엘리트층이 영국 사교계에 데뷔해 귀족과의 대규모 결혼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영토를 초월한 가족으로 묶인 계층 간 끈끈한 혈연관계는 곧 양국 간 전쟁을 지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 연장선상에서 미국 거대 자본가의 딸인 어머니와 영국 귀족인 아버지가 낳은 윈스턴 처칠은 진정으로 영국과 미국의 패권 화합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문재인 정권이 주도해서 재점화시킨 반일감정에서 비롯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와 일본 상품 불매운동은 반쪽짜리 하위정치로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만한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어느 정당이 집권하는 지의 여부를 떠나, 이러한 답보상태가 지속되는 이유들 중 하나로는 분명 상위정치 상의 ‘바퀴와 부챗살 전략’(Hubs and Spokes System)을 추구하는 미국(과 중국)이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외 강대국인 미국에 가상적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는(즉 부챗살들을 사이를 바퀴로 잇기 위해서는) 양자관계로 동맹을 맺어온 한국과 일본을 합친 삼각편대가 달성돼야만 한다.
무엇보다 남중국해 영해분쟁을 비롯한 중국의 A2AD 전략을 꿰뚫기 위해서는 (미국에게) 상대적으로 지정학적 가치가 더 큰 일본에게도 이러한 전략은 무차별하기에, 한국의 접근법이 (마치 일본에게)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움직이며 일본과 미국이 지향하는 전략을 삐걱거리게만 만들고 있다는 변명의 소지를 남길 수 있게 만든다.
실례로, 박근혜 정부 당시에 체결된 지소미아(GSOMIA)가 문재인 정부로 넘어가면서 삐걱거린 점은 글로벌 단위의 국제관계와 지역 단위의 국제관계가 불일치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불일치의 원인들 중에는 분명, 한국 입장에서 만족할만한 일본의 과거사 대처(혹은 민족주의의 해소)가 없었기 때문도 있었다.
나아가 최근 유출된 미국 기밀문건이 주지하듯, 미국은 바퀴와 부챗살 전략을 심화 발전시켜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영국 항공모함과 왕립 해군을 동해에 배치시킬 계획도 옵션으로 포함해 왔다는 점은, 상위정치에서의합리적(rational) 지역 만들기 용이해질지라도 합리적(reasonable) 지역 만들기는 더 어려워질 소지가 크다.
이처럼 탈동조화의 가능성은 역설적이게도 지역 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강대국에게 있어, 그들의 역량을 평가받게 만드는 중간시험과 같은 역할을 한다. 나아가 브레진스키가 미국에 제언하기 위해 쓴 저서인 <거대한 체스판>에 기술되어 있듯, 그가 예측한 전지구적 단위에서의 충돌지역들(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터키, 한국) 내의 긴장관계는 점차 고조되고 있는 듯하다. 한편, 탈동조화의 당사자들에게는 이는 분명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근 국가들에게 기회로 작용한다.
역외 강대국인 미국은 과거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시절의 한일관계의 긴장 관계 속에서도 어떠한 뚜렷한 해소방안을 내놓지 못한 채 (스웰러가 말한) 타조처럼 멀리서 관망하기를 고수했는데,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부임한 지금도 그때와의 접근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러시아의 경우도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빠르게 전쟁을 종결시키고자 했지만, 군사력 투사의 제한과 러시아 내부의 갈등관계로 인해 전쟁은 장기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중 더 많은 역내 자율성을 추구하는 프랑스도 이러한 탈동조화의 움직임을 발판 삼아 유럽연합의 자체 안보라는 이름 하에 유럽의 군사적 주도권(과 정치적 발언권)을 높이고자 하지만, 오랜 시간 우크라이나에게 EU 가입과 NATO 가입을 해주겠다는 수사적 호소에 대한 발언의 책임을 져야만 하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2024년에 선거가 걸려있는 미국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게 어떠한 형식으로든 우크라이나 전쟁을 결정이 날 예정인 점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권력불문 그 누구도 다모클레스의 검(The Sword of Damocles)을 피할 수 없다.
1945년 4월 미군(왼쪽)과 소련군이 독일 동부 토르가우에서 처음 만나 반갑게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맥락상 차용)
이러한 지리적 중간국에 위치한 한국이나 우크라이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쟁은 언제나 슬프고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되는데, 물리적인 갈등관계가 발발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비켜가기 위해 한국은 과연 어떤 국가들과 더 많은 연대를 통해 긴장관계를 해결해 나가야 할까? 사담이지만, 서독이 통렬한 과거사 반성을 행한 이유들 중에는 분명. 냉전 당시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들에게 수출로 경제를 성장시킨 독일인지라, 그들(인접국들)에게 우리가(독일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과거사 교육이 행해진 점도 일정 부분 존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월남전 파병 당시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행한 것에 대해 생경한 우리의 모습(올해 초, 사법부는 당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고 공식 판결을 내렸다)과, 오늘날 한국의 주요 수출&수입 국가인 베트남이라는 사실을 통해, 우리 또한 자유주의적 양심(Conscience)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비로소 지역 단위가 국제정세를 분석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늠좌로서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