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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atriz Nov 19. 2023

스위스는 어디에?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Newsroom 시즌 1 中

20세기 이래, 우리는 대체로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된 세계(혹은 국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양차대전 이후 만들어진 미국주도의 자유주의 질서 체제라는 지구 단위의 사회에 본격적으로 편입된 한국의 서사 속에서, 이러한 인식은  깊이 내려있다. 그리고 그 인식 속의 민주주의에, 아테네의 폴리스로 시작해 프랑스혁명이 꽃피우고, 미국이 만개시켜 현재까지 이르는 공식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신화적 서사는 사후적으로 반추함으로써 매끄럽게 만들어질 수도 있지만, ‘완벽히’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볼 수는 없다. 신화는 구전(口傳)되며 편집되는 재조정의 과정을 거치는 법이다.

나아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민주주의의 위기에 도전하는 권위주의와의 대립이나, 자유주의 수호자 나토의 동진(東進)에 따른 러시아의 반발로 치환시켜 해석하는 것 또한 적확한 해석이라 보기 힘들다.

출처 : Youtube <1917> 中

이 인식틀 속에는 염연히 자유민주주의 제단(shrine)에 미국과 유럽을, 그 안티-테제(anti-thesis)로 러시아를 각기 욱여넣은 뒤, 이론에 맞춰 설명한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법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민주주의(이자 자유민주주의)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개’했는지에 대한 추적이 필요할 것이다. 근래에 이르러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자체와 동일시되고 있기에, 각각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통시적으로 “Democracy”라고 번역되는 민주주의(적확하게 표현하자면 민치주의 [民治主義])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와 스위스 변방의 시골에서만 가능했다. 요컨대 서양 지성체계에서 민주주의는 사람들에게 일관되게 계되던 정체(政體)였다. 시대별 주류 사상(가령 공화주의와 사회계약론)들은 각자의 이유로 민주주의를 경계하며 두려워했고, 민주정이 들어서는 것을 방지하고자 나름의 이론적 방파제를 구축했다.

출처 : Youtube <1917> 中

한편,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민주주의가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되고 이론으로 엮어지면서, 19세기 사상가(특히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벗길 수 없다면 적어도 그 내피에 있는 급진적 역학을 씻겨내고자 “자유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그들은 전통적인 대의정부를 개량해, 자유민주주의의 외피를 씌웠다. 즉, 국민이 직접 통치하는 민치정도 아니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정도 아닌, 그 어딘가를 취했다.

출처: Youtube <1917> 中

자유주의는 민주주의(Democracy) 속 민치(民治)라는 요소는 투표의 의미를 권리 행사가 아닌, 의사 표명으로 희석시켜, 민주정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민주적 요소를 온순하게 훈육하는 전술을 취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투표가 주권의 간접적 행사로 간주되기에, 그들의 전략이 완벽히 들어맞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곧 투표자유주의를 뜻하는 것처럼 변모됐다. 이윽고 자유민주주의는 간접적인 민주정이라는 의미로 변모해, 이제는 민주주의가 당연히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논리구조의 연장선에서 본다면, 마치 오늘날 푸틴을 필두로 근래에 부상하고 있는 경쟁적 권위주의가 매력적이라 보일 ‘수도’ 있다. 시대별 사상가들도 지양한 민주정이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이라 쓰고 경직적인) 경쟁적 권위주의 국가에 비해, 서유럽과 미국에서 보이는 포퓰리즘과 정치적 이념 양극화가 정치적 이슈로 대두되고, 다문화주의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다양성의 피로감이, 마치 자유주의가 시대에 뒤떨어지고(obsolete) 더 이상 견딜 수 없는(no longer tenable) 상태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한몫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정치적 불안정성을 제(除)한 채, 인권 등의 보편적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효율적 통치를 우선시하는 일련의 자세는, 19세기 자유주의가 그 이전 세대의 사상으로부터 물려받아 20세기에 넘겨준 통찰(insight)이다.

하물며 소수 집단이 지성을 도모한다고 반드시 문제에 대한 해답이 도출되지도 않는다. 소수 엘리트가 인류사 대부분의 시간에 국가를 통치해 왔음에도, 그러한 체제들은 역사 속에서 무수히 많은 전쟁을 선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피로감으로부터의 도피를 통한 ‘자연적’ 상태로의 회귀는 곧, 회귀하기 희구하는 이들이 기억하는 소싯적 상태로 돌아가기 고대하는 것과 동일하다 (실제로 유럽의 일부 극우들은 상대적으로 낙후돼 과거의 상태를 보존하고 있는 러시아를 동경하기도 한다).

<캉디드>의 주인공도 자신이 처음 있던 장소가 이상향(理想鄕)이었음을 깨닫고 그리워함에도,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Oui, mais il faut cultiver notre jardin)" 라고 역설한 것처럼, 탈피해야 할 삶의 부분이 아닌, 긍정과 존중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더 합리적(reasonable)인 접근법이 아닐까?

민주정은 보통사람의 목소리가 통치를 좌우하는 정부형태이다. 이념적 당파논쟁과 포퓰리즘으로 점철되든, 소수 엘리트의 미디어 통제식 권위주의이든, (볼테르가 실제로 한 말은 아니지만 그의 주장을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신념만큼은 지킬 수 있어야 민주적인 사회가 구성될 수 있지 않을까? SNS가 기대만큼 민주사회를 위한 순기능으로 작용하지 아니하고, 각자의 편파적인 주장만을 자극적으로 원용하는 세태(世態) 속, 이러한 자세의 함양은 필수적이지 않을까..?

출처: Youtube <1917> 中

미흡한 장문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생각할 거리가 되기를 바라며.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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