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과 평, 그리고 부연과 잡설들
오징어게임3(2025)
평점 : 7.4/10
평: 전체주의의 기원: 광기는 보이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것, 그리고 원자화의 원자폭탄화
(스포일러 있습니다)
경주마를 보고 즐기는 성기훈이 참가한 오징어게임을 보고 즐기는 VIP를 바라보는 시청자. 어쩌면 이 게임(이자 드라마)을 관전(이자 관람)하는 우리 또한 미쳐있을지 모른다.
작품평에 대한 논의는 분분하지만. 성기훈의 마지막 대사인 "사람은 말이 아니야"에서 Respawn 될 수 있는 플레이어와, Resurrect 할 수 없는 유한한 인생을 병치시키는 과정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과연 우리는 새 생명에 대한 탄생(이자 오징어게임으로 치면 새로운 플레이어의 유입)해서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마주하고 있는지 되묻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기훈의 죽음은 본인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또 하나의 열린결말(이자 숙제)을 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황동혁 감독 본인이 밝히듯, 기존에 염두해 두고 있던 결말은 성기훈이 게임에 다시 참가해, 이 시스템을 다 터트리고 가족이 자유의 땅으로 도미(渡美)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게임은 미국에서도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중이라는 점을 암시하며 끝맺는 것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던 <베르세르크> 가츠의 명대사가 생각날 따름이다.
데이비드 핀처의 후속작을 위해서든, 황동혁 감독 내면의 변화이든, 후원방식으로 운영되는 넷플릭스의 운영원칙에 의해서든, 드러나지 않은 모종의 대내적&대외적 이유이든, 이러한 수정이 일어난 것은 황동혁 감독 본인의 선에서 매듭지을 수 있는 부분은 매듭을 짓고 끝을 내고 싶었지 않았을까도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미 <오징어게임2>가 제작되던 당시에,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후속작을 준비할 것이라는게 보도된 점에서, 걸려있는게 많아질수록 오롯히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기에는 애로사항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힘드리라 생각한다.
한편으로 <오징어게임1>부터 모든 것을 비웃으며 끝까지 달려온 황동혁 감독 본인 또한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자신의 결말에 대해 자조하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성기훈의 눈부처를 통해 핵폭발이 연상되는 장면을 집어넣은 것은 "우리가 사는 이 모든 것(국민국가든, 자본주의 시스템이든, 지구든, 뭐든)을 터트리고 끝내버리는 순간 (핵에 의해서든, AI에 의해서든, 지구온난화에 의해서든) 그 무엇도 남지 않는다"를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건, 적어도 <오징어게임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감독 본인의 홀가분한 마음'만'을 담아 성기훈의 눈부처를 통해 핵폭발이 연상되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광기를 어떻게 조절(channel)할 수 있을지, 그걸 어떻게 포착하고 감별할 수 있을지, 경도된 사람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가 또 하나의 숙제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오징어게임3>에 실망한 분들에게 <오징어게임2>에서 성기훈의 혁명은 (대내적이든 대외적이든 여러 변수에 의해) 끝나버렸다고 간주하고 보면 좋지 않을까 제언한다.
다시말해, <오징어게임2>에서 <1984> 결말로 이미 끝맺었다고 치고,
<오징어게임3>에서는 감독이 전달하고 싶은 바를 담았다고 보게 된다면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호불호도 은연중에 내재된 개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음습함을 건드려서 나타나는 반작용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게임3>에 대한 거센 호불호 이 자체를 즐기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차갑게 눌러 담아 그려낸 <남한산성>도 같은 의미를 전달하지만, <오징어게임 시리즈>만큼 시청자들에게 다가가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소. 그렇지만 틀렸소. 백성을 위한 새로운 삶의 길이란 낡은 것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에서 비로소 열리는 것이오. 그대도 나도 그리고 우리가 세운 임금까지도 말이오." - <남한산성>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