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중함
나는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베트남에 도착해서 2달간 여행 예정이었다. 한 달쯤 여행했을까? 코로나가 한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인을 쳐다보는 시선이 달라져 불쾌하기도 했고, 한국행 비행기는 사라져 불안하기도 했고, 모든 식당과 카페가 문을 닫고 씁쓸하기도 했던 나의 베트남 여행을 뒤돌아본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자유로운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베트남 여행에서 나는 내가 일상적인 것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슴 깊이 새겼고,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하롱베이와 깟바섬으로 들어가기 전 잠시 쉬어갈 도시 '하롱'에 도착했을 때, 코로나로 인해 모든 여행 일정이 취소되었다. '하롱 투어 중단', '호텔 취소'. 모든 관광이 스톱되었고, 여행 와서 숙소에만 머무는 아이러니하고 독특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되었다. 베트남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고층 아파트를 렌트하기로 했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경비원이 열체크를 하며 나의 이름을 명단에 써넣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 다음으로 확진자가 많은 나라가 한국이었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기에, 혹시 내가 '한국인'이라 경계하나 싶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무 증상 없음을 확실하게 해 두고 싶었다.
알고 보니 열체크는 아파트를 출입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었다. 외출할 때마다 열 체크하는 단 1분 남짓이 번거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아파트 입구에서 열 체크를 하며 경비원과 인사를 했다. 어느새 이 일은 나의 일과가 되었고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에 경비원이 없기라도 하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제는 마치 파트너처럼 느껴지는데, 서로 눈인사 후 나는 머리를 숙이고 경비원은 체온을 측정한 후 짧고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쿨하게 헤어진다. 일련의 코로나 바이러스 체크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졌고, 나를 잠시나마 곁에 둔 경비원이 정답고 반가웠다.
여행지는 잠시 머물다 떠나야 하는 곳이라 어느 장소에 그윽한 향기를 기억하기란, 혹은 내가 진하게 사랑하는 것을 만들기란 힘들다. 스쳐 지나가는 다정한 사람들은 나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며 곧 헤어져야 할 사람들과 따뜻한 정을 나눌 기회는 너무나도 드물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여행을 하며 아쉬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눈부신 풍경을 두고 가서가 아니라, 자주 마주칠 수 없는 사람들이 나를 아쉽게 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정말 옷깃 한 번 스쳐 지나가는 것들은 '지나가'는 것에 무게가 실려있다. 여행은 '반복'에게 틈을 허용하지 않기에 '지나가는 것'들이 되기 십상이다. 인연은 스쳐 지나간 두 사람의 순간들이 쌓여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다. 순간은 한 조각의 퍼즐일 뿐이며, 이 퍼즐을 하나 둘 조금씩 맞추어 나가는 것이 단단한 인연이 되는 길이다.
여행보다 나의 시간이 진하게 담긴 것은 일상이며 일상에는 나의 시간이 만들어낸 인연과 가슴 깊이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 하롱베이의 절경은 아름답지만 나의 성장기가 담기 오륙도만 하지 못하고, 이 곳의 귀여운 강아지들에겐 한 번의 눈길이면 충분하지만 나의 푸들 '조이'는 하루에 수십 번을 보아도 부족하다. 일상 속의 보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은, 한 명의 베트남 경비원의 일상 속으로 잠시나마 들어갔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며 친절한 한 사람과 '반복된' 만남을 했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여행이 반복될 수 없기에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상은 사소한 것들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어쩌면 귀찮고, 뻔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재하면 공허감을 느끼게 하고 지속하면 사랑을 일게 하는 것. 인생은 반복된 사람과 나누는 인사처럼,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