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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스 할머니

by 루시

스무 살까지 할머니댁에서 자랐다. 대학을 나와 교사를 하던 할아버지와는 대조적으로, 할머니는 소학교도 다 못마친 상태로 스무살에 시집 와 할아버지의 늦은 대학시절부터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한 이래로 여느 여인네와 같이 집안 일만 하며 사셨다. 할머니는 자신의 삶에는 그다지 회한은 없는 듯 했지만 할아버지와 부부싸움을 하고나면 그렇게 서러워하셨다. 할아버지와 말다툼을 할 때면 꼭 배움이 짧아 무식하다는 말을 들으셨던 것 같다. 한숨을 쉬며 훌쩍이고 씩씩거리는 모습을 어린 손주들에게 숨기지도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는 더욱 큰 목소리로 더듬더듬 불경을 외우듯이 성경을 읽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성경을 필사하던 모습으로 할머니를 기억한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은 배우자의 자존심을 다소 유치하고 졸렬한 방식으로 긁어내리는 할아버지의 옹졸함이 부끄러워서라기 보다, 나이들어서도 배우고 지금보다 나아지고자 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글씨를 잘 읽지 못하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하셨다. 가끔 할머니 옆에 엎드려 숙제를 하는 나나 동생에게 관공서에 낼 서류를 채우거나 성당의 주보 읽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하실 때 조금이라도 틀리게 읽은 걸 지적하면 무안해하며 화를 내곤 하셨고, 그날의 깊은 산속 절간 스님의 독경소리 같은 성경 읽기는 더 지독히도 계속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할머니의 성경 읽기와 필사는 금방 그치지 않았다. 해가 바뀌어 못쓰게 된 우리들의 공책은 언제나 할머니의 차지가 되고 그것들은 차곡차곡 쌓여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는 좀 더 능숙하게 성경을 읽어내셨다. 물론 트로트 구절같기도 하고 스님 독경소리 같기도 한 구성진 성경 낭독 음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지만, 꽤나 능숙하고 빠른 속도로 매일 같이 성경을 읽게 되셨다. 그러곤 다 채운 공책을 북북 찢어 가마솥을 얹어 높은 아궁이의 불쏘시개로 시원하게 불살라 버리셨다.




백화점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땐 한참 결혼하는 친구들이 많아 살림살이 장만하는 것을 곧잘 주워듣던 나도 그릇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을 때여서 틈만 나면 그릇 코너를 맴돌며 한참 유행하던 영국식 도자기에 눈길을 둘 때였다. 도자기 구경을 실컷 하고 돌아나가는 길에 복도에 걸린 그림이 눈에 띄었다. 걸린 그림들은 몇 개 되지는 않았지만 고상한 도자기에 그려진 꽃과 식물들보다도 더 정교하고 화려하게 한껏 피어 부풀어 오른 꽃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걸 어떻게 그리지? 하며 자세하게 들여다보다가 어? 연필이잖아? 하며 한 번 더 들여다본다. 간단하게 식물의 이름과 그린 사람의 이름, 주재료만 적혀있는 걸 보고 이게 왜 여기에 걸려있나 두리번 거리다 백화점 문화센터에 꽃그림 그리는 클래스가 있는 걸 그제서야 알게 된다.


우리 집 근처 걸어서 갈만한 가까운 거리에 백화점이 있어도 문화센터는 잘 가게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온갖 물건들이 휘황찬란하게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사고 하느라 문화센터가 있는지도 몰랐다. 백화점이 동네 흔한 상가와도 같은 느낌이 될 때는 시도 때도 없이 북적거리는 백화점은 곧 기피 장소가 되고, 퇴근할 때 시간 맞추어 식품관에 들러 떨이하는 저녁 찬거리만 쏙 들고 오는 곳이 되었다. 더욱이 할 일도 많고 살 것도 많은 아이 키우는 집이 아니니 백화점에, 그것도 문화센터에 들를 일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어린 아이 둘을 정신없이 키우는 여동생이 애들을 맡겨 놓고 그 사이 제부의 와이셔츠,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들 내복과 신발을 사고, 식사 거리 장보기를 모두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곳은 백화점이라며 백화점이나 마트 문화센터의 경제적 유인효과를 아주 이해도 높게 설명해 주었기에 백화점 문화센터의 주요 이용대상은 아동이라는 선입견을 가졌었다. 여튼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 문화센터에 성인을 위한 강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것저것 찾아보게 된다. 꽃그림을 찾아 강좌를 검색해보니 아쉽다. 낮에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꽃그림은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시도때도 없이 틀어 놓는 TV에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인터뷰를 한다. 이번에 가족들이 전시회를 열어 주었는데 할머니의 나이가 90세가 넘으셨다. 할머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70세 즈음이었는데 근 20년간 그림을 그려온 거다. 어릴 때의 20년은 영겁으로 느껴질 무지막지한 길이의 시간이다. 70세가 넘은 사람의 20년은 어떨까? 하고 생각해본다. 뉴스의 자막엔 그가 한국의 모지스 할머니에 견줄 수 있다고 나온다. 모지스 할머니는 미국의 국민화가로 주로 풍속화를 그렸는데 76세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해 101세로 사망할 때까지 아주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려온 화가다. 그의 정겨운 그림을 보면 일생이 행복 그 자체일 것 같지만 그건 아니란다. 그런데도 그렇게 포근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다니, 그리고 그만의 그림체가 너무 분명하다. 누가 봐도 작가가 누군지를 알 수 있다. 내가 제일 부러운 점이다.


여튼 70세가 넘어도 전에는 알지 못했던 아주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빠져들 수 있다. 그런데 그 일을 하고자 한다면서도 시간적 제약이나 경제적 허들 같은 문제를 들먹인다면 그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아닐 수 있다. 나도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시도하지 못할 여러가지 것들을 고민했지만 반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건도 이렇게 저렇게 맞추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화점 복도의 꽃그림들이 생각이 났다.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고 마음이 생겼다는 게 관건이다. 게다가 난 환갑이 넘어 다시 한글을 익히고 성경을 읽어낸 우리 할머니를 보고 자랐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것은 언제나 시작할 수 있지. 나는 지금 시작해서 직업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그저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든 것 뿐이다. 또 일주일에 한 번 하루 잠깐 그림을 그린다고 처음부터 피카소나 고흐 같은 엄청난 화가가 될 리도 만무하다. 내가 원하는 건 70세가 넘어 시작한 그림을 30년 가까이 그려낸 모지스 할머니의 인내와 끈기일 수 있다. 난 아직 그보다는 훨씬 어리니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취미 한 가지를 만들 것이다.


그렇게 해서 꽃그림을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일주일에 한 번, 한시간 남짓 차곡차곡 색연필로 색을 입힌다. 이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그림을 그릴까마는 그래도 색연필은 종이 위에 색으로, 꽃으로, 잎으로 남아, 어느 샌가 덩굴이 되고 꽃봉우리를 만들고 뿌리를 내려 잎을 키우니 내가 그리려고 했던 아름다운 풀과 나무가 되어 있다. 이 그림들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년에 한 번 전시회도 연다. 아직은 개인전을 할 만큼 많은 작품 수는 아니지만 계속 쌓이고 쌓이겠지. 언젠가는 내 이름을 걸고 나의 차곡차곡 쌓인 지난 시간들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


지금의 나는 할머니의 마음과 다를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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