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바뀌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근무지가 바뀌었다. 근무지가 정해지자마자 집에서부터의 거리가 걱정이다. 지도 앱을 켜서 대중교통으로 걸리는 시간과 경로를 탐색한다. 이런... 최소시간이 한 시간 15분이 걸린다. 그것도 지하철을 세 번 타야 한다. 그중 두 번째 노선은 지옥의 9호선이다. 하아... 다른 보통의 직장인들보다 출퇴근이 약간 빠른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9호선은 침이 꼴깍 삼켜진다.
주기적으로 근무지가 바뀌는 나는 입사 이래로 이제껏 직주 근접의 행운을 누려본 적이 없다. 고향에서 상경한 이래로 계속 그래왔다. 서울 안에서도, 끝과 끝이 아니더라도, 출퇴근 시간이 짧았던 적이 있었던가. 이쯤 되면 한 시간 거리는 그러려니 생각을 하려 해도 바로 직전 출퇴근 시간보다 30분이나 더 긴 건... 너무 한다. 아니 자신이 없다.
며칠 전에 중학교 2학년 조카와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고속철도를 타기로 해서 조카는 아침에 한 시간 정도 걸려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까지 왔고, 나는 기차역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살아서 이동 거리가 그리 부담스럽진 않았다. 고속철도를 타니 부산까지 2시간 반이 채 걸리지 않았다. 부산역에서 또다시 묵을 곳까지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탔다. 조카는 그쯤 되니 이런 말을 한다.
- 이모, 한 시간 버스 타고, 두 시간 기차 타고, 또 한 시간 버스 탔잖아. 우리 집에서 서울 가는 것도 여행이랑 별 다를 게 없네?
- 그렇지. 시간으로 보면. 근데, 어떤 사람에겐 여행이고 어떤 사람에겐 여행이 아닌 건 이동하는 시간에 어떤 의미를 담는지에 따라 다르겠지. 이동하는 시간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여행 아니겠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에게 이동은 여행이 아니다. 스무 살 무렵부터 계속된 통학과 출퇴근 전쟁은 도무지 나에게 여행의 의미를 주지 못한다. 더군다나 고된 이동 시간을 지나 집중이 필요한 일을 장시간 해야 하니 여행을 위한 이동이 그 끝에 휴식과 즐거움을 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여행은 어쩌다 가끔이지만 통학과 출퇴근은 일상이다. 싫어도 해야 한다.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도록 계속 여행하는 기분은 고통이다.
- 밖에 나가면 늘 여행하는 기분이에요.
친구 딸의 말이 한 번 더 메아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