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늘 여행하는 기분

by 루시

호치민에 있는 친구에게 다녀왔다. 친구는 딸과 함께 3년째 베트남에서 체류 중인데, 사춘기를 맞이하고 있는 딸 때문에 모처럼 방문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사춘기의 여러 증상 중 하나는 부모와 어딜 함께 가길 거부하기가 대표적이다. 어떤 이유를 들어도 설득이 되지 않고, 심지어 용돈을 주고 어르고, 달래고, 부탁하고, 빌어도 소용없다. 결국 가족 모두가 집을 오래도록 떠나 있어도 무조건 혼자라도 집에 머무르려고 한다. 이 딸도 역시나였다. 둘이서 먼 타국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일이 더 많기에 엄마는 딸의 비위를 맞출 수 밖에 없다. 엄마가 없는 틈에 딸에게 물어 보았다.


- 왜 밖에 나가기 싫어?

- 그냥 집에 있는게 좋아요.

- 밖에 나가고 싶을 때는 없어?

- 밖에 나가면 계속 여행하는 거 같아요.


나는 단박에 그 기분을 알아차렸다. 어린이집 다닐 시기부터 타국에서 생활해 온 친구의 그 딸은 극도의 내향인이었던 거다. 집에 있는 게 더 좋고, 여행을 스트레스로 느끼며, 여행을 가더라도 일부러 친구가 있는 곳에 머물거나 그곳을 중심으로 아주 적은 곳을 다니는 나의 기분과 같은 거였다. 어딘가를 계속 헤메는 꿈을 자주 꾼다. 눈을 떠보면 내가 아는 누군가를 만나거나 내가 편안히 머물 수 있는 장소에 도달하지 못해 콩딱거리고 있는 심장박동을 그대로 느끼고 만다. 다만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이 안도감을 줄 뿐이다. 그 기분이 여행과 맞물려 어디를 다니든 늘 여행하는 기분은 긴장감 그 자체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현실과 다른 무엇, 탈출, 새로운 것, 다른 문화, 도전과 같은 여행의 긍정적인 면을 받아들이지만, 나에게 여행은 폭탄처럼 내게 떨어진 긴장과 스트레스, 경로 이탈, 많은 자극, 피로, 일상 유지 불능, 두 배 이상 걸리는 회복시간과 관련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은 세상 편안한 공간이며, 그런 공간이어야만 한다.

생각의 끝은 곧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러니... 내가 살아갈 편안한 공간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무하고나 결혼해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고 만다. 그 생각의 방아쇠는 집이다. 혼자 살아가며 겪는 여러가지 일 중에 주거에 관한 걱정은 나에게 있어 안정과 안전에 관한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항상 어딘가를 헤메고 있는 것 같은 기분과 느낌과 마음은 어딘가에 편안하게 머무르고 싶다는 갈망과 열망과 집착을 유도한다.


또 그로부터 생각의 고리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으로 뛰어 넘어간다. 내 힘으로 내가 머물 곳을 찾아보자면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새해 계획을 세울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재무계획이다. 올해의 재무계획은 눈에 띄게 빚을 줄이고 방 두 칸이 있는 아파트를 물색하기로 정했다. 매수가 목표가 아니라 물색하기다.

그러나 연초부터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설 전에 조카와 함께 갑자기 부산여행을 가게 되는 바람에 여행항목에 배정한 예산은 벌써 다 써버렸다. 카드 씀씀이는 줄지 않았고, 덕분에 새해 계획으로 세운 재무상태는 더 엉망이 되었으며, 지난 해 말 컨설팅을 받았던 노후자금 계획서는 더욱 더 복잡해졌다. 연봉은 매년 조금씩 오르고 있지만, 새로운 재무계획에 반영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지는 않으니, 가지고 있는 자산을 처분해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과 금액이 상대적으로 적은 부동산 대출을 청산하기로 했다. 물론 가장 대출기간이 길고 금액이 큰 부동산 대출은 그대로다. 그러나 아파트 물색은 대출이 있어도 가능하다.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집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어 실수요자가 내 집 마련하는데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글들을 심심찮게 보고 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현금이 어느 정도 있어야 청약의 행운을 날리지 않거나 급매로 나온 아파트를 내것으로 가져올 수 있으니 목돈 모으는 것을 절대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니 걱정은 사라질 수 없다. 목돈을 모으려고 적금을 계속 붓고 있지만 내 집 마련을 하기에는 아주 조금의 금액이라 더디기만 하다.


이 나이 되도록 내집이 없으니 사는 게 그저 불안하다. 물론 지금 사는 집이 너무 오래되어 살기에 지나치게 불편하다던가 집주인이 전세금을 들고 사라질 수도 있는 불안한 집은 아니지만, 가뜩이나 성격이 걱정인형 그 자체인 나는 해가 바뀌면서 나이 걱정도 하나 늘었다. 내 집 갖기를 위한 여행을 하는 기분과 함께 조바심이 더해졌다.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기에 안정된 결혼 생활과 비례하는 주거 안정 또한 그렇지 못한 나의 주거 불안을 상대적으로 크게 해석하게 되어 버린다. 또... 집 때문에... 결혼을 해야 하나...이런 생각을 또 하게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4년의 시간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