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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이렇게 만나는 거야

by 루시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할 땐 그러려니 했다. 그저 관심사가 달랐을 뿐이고 나는 몸이 심하게 아프거나 중요한 자격증이나 직업을 바꿀 시험을 준비 중이어서 오히려 소모적이면서 다분히 의례적인 인간관계를 멀리할 필요도 있었다. 그 친구들이 자녀를 하나둘씩 낳아 전투적으로 살 때는 내가 그들의 푸념과 시월드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 이제 이렇게 멀어지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더구나 제일 친했던 친구들은 모두 외국에 나가 살게 되어 혼자 지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렇게 친구들과도 자연스레 멀어져 혼자 걷고, 혼자 산에 가고, 혼자 그림 그리고, 혼자 하는 운동을 즐기고, 집에서 요리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없다는 건 진리이다. 혼자 놀고 뭐든 혼자 하는 것을 힘들어하기는커녕 오히려 좋아하지만, 같이 식사하며 대화하는 기쁨은 언제나 아쉬웠다.

그러던 중 강남구 1인가구 커뮤니티센터에서 진행하는 행복한 밥상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다. 혼자 먹는데 익숙해지니 아무 하고나 마주 보고 식사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청한 것이다. 프로그램은 다 차려놓은 음식을 그냥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오는 손쉬운 내용은 아니었다. 먼저 1인 가구의 식건강을 주제로 한 푸드 스타일리스트의 강의를 듣고 이를 응용한 요리의 시연을 보게 된다. 그 후 같이 자리한 사람들이 팀이 되어 주제음식을 같이 만들어 먹고 나서 뒷정리를 같이 하는 활동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엔 자리도 무작위로 내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고 서로 안면도 없었기에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이 멋쩍기도 했다. 하지만 같이 손발을 맞춰가며 역할을 나누고 또 음식을 만들며 취향을 묻고 나누어 먹는 행위 자체가 주는 재미를 점점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나에게 어떤 설레는 마음을 주었던 건 그다음이었다. 여러 회차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한 참가자가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앞으로 모임을 계속 이어가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물론 마지못해 그 자리에서 수락하신 분도 있을 테고 계속 모여서 뭔가 얻는 게 있을지 의심하고 주저하신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같이 뭔가를 도모해 보자는 순수한 의도와 느슨한 네트워크에 대한 열의, 그리고 함께하는 식사에 대한 즐거움을 한데 버무려 ‘자주밥상’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자주밥상’ 첫 모임에선 단출하게 세 명이 모였고, 그 후에도 여러 번 모임원이 조정된 끝에 결국 처음과는 약간 다른 세 명으로 모임을 시작하기로 했다. 막상 기대보다는 조촐했기에 뭐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으므로 그건 감안하고 이해해줘야 한다. 다 내 마음 같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리고 이렇게나마 모여서 뭔가를 해 본다는 것 자체가 좀 고무적이기도 했고 말이다.

첫 메뉴는 코다리찜과 미역국이다. 다른 반찬은 조금씩 생각나는 대로 추가하기로 했다. 행복한 밥상의 운영방식을 토대로 메뉴선정, 모임회비 수합과 통장 개설, 예산 수립 후 재료 구입과 준비, 요리와 설거지 및 뒷정리까지 함께 의견을 내고 또 각자 역할을 나누어 차근차근해나갔다. 처음의 어색하고 조심스럽기만 했던 부분들도 각기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수행하는 동안 잘 익혀온 사람 대하는 비법들을 잘 버무려 톱니바퀴 이가 들어맞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음식과 그에 수반된 서로의 생활방식을 조금씩 이해하고, 배우고, 나 스스로에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서로 배려하고 보완하는 부분도 뿌듯할 만큼 멋졌다. 그리고, 센터 주도로 도움과 지원을 받고 간단하게 요리에 부분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각자에게 더 많은 수고를 요구하는 것도 새삼스레 느껴졌다. 역시 커뮤니티 센터의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기획되고 무리 없이 잘 진행되도록 애쓰셨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이 기회로 센터 선생님들께 마음 깊이 감사 인사를 드린다.

모임 횟수를 거듭하면서 때에 따라 모임 성격에 맞는 메뉴와 운영방식, 개선사항 같은 것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묻는 식후 타임도 큰 휴식과 편안함이 배가 되었다. 무엇보다 기쁜 일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회원이 늘어나고 서로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이해하면서도 관계가 돈독해진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만나는 친구는 어떤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어 마음을 전하는 관계가 되기 쉽지 않은데, 서로 다른 연령대에서 모여도 이렇게 느슨하면서도 여유 있고 포용력 있는 관계가 되려고 서로 노력하는 부분들이 보여서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또 하나의 인연을 맺었다. 행복한 밥상 프로그램에서 같은 팀으로 만났던 참가자를 회사 교육 출장에서 우연히 바로 옆자리에서 또 같이하게 된 것이다. 우리 둘 다 눈이 똥그래져 놀랐지만, 그 후 봇물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던 중에 다른 프로그램도 또 같이 참여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어 더 놀랐다. 억지로 친구 만들기도 쉽지는 않고 자발적으로 모인 동호회에서도 뻘쭘해지기 십상인데, 이런 인연을 만나는 건 쉽지 않으니 잘 이어가야 한다. 둘이 하는 일도 같고, 성격과 취향도 비슷하다고 느껴졌고, 하고자 하는 일도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니 이런 인연을 잘 잇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용기를 내서 먼저 말을 꺼내 보기로 마음먹었다. 주기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지고 서로의 목표를 응원하며 의지하고자 하는 기회를 만들자고 말이다. 이것은 프러포즈가 아니지만, 사람 사귀는 일은 항상 그리 간단치 않은 일이지 않은가. 호호. 그렇게 시작되어 우린 서로가 목표하고자 하는 방식과 생각대로 글을 쓰는 시간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이것은 그냥 일회적으로 즉흥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라 관계에 대한 필요와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 그리고 고독한 마음으로 혼자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스스로 나에게 부여한 사회적 역할 수용의 준비된 태도라고 생각하려 한다. 그 준비는 역시 행복한 밥상이 도와준 듯하고 말이다.


세상은 겪을수록 나에게 언제나 선물과 과제를 함께 준다. 어떤 만남과 관계가 경쾌한 즐거움과 편안함을 주었다면, 그 관계와 사람에 대한 기대를 지나치지 않게 가지는 법에 대해 늘 생각해 보게 하고, 나는 그러한 사람인지를 되묻게 되는 게 그것이다. 그리고, 내가 대접받고 싶은 것처럼 다른 사람을 대하는 법을 실천하게 한다. 그러고 나면 주위로부터 받는 도움과 마음으로 내 마음도 따뜻해지고, 나 자신을 멋진 사람으로 북돋우면서 다시 또 타인에게 너그러워진다.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나는 부드러워진 시선을 가지고 또 1인가구 지원센터의 다른 프로그램들을 성실하게 참여하게 되는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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