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오페라를 감상하게 되었다. 푸치니의 나비부인. 나비부인은 <라보엠>, <토스카>와 더불어 푸치니의 3대 오페라로 꼽히는 작품으로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와 아름다운 음악으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거 오페라가 만들어질 당시를 생각해 보면 그럴 테지만, 지금은 구태의연한 스토리에 좀 더 주체적이지 못한 여성의 삶에 고개를 가로젓게 될 평가이다. 그러므로 이를 스토리를 재해석하여 또 다른 형식으로 만들어낸 미스사이공의 스토리에 좀 더 공감이 가고, 그러다 나중에는 미스사이공 또한 자본주의적, 문화사대주의적, 여성비하적, 인종차별적 모습을 품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 나선 또 다른 형식과 좀 더 주체적으로 변한 동양여성의 캐릭터를 원하게 된다. 오페라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노래하는 사람은 오페라 가수이고, 뮤지컬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춤을 추고 노래하는 사람은 뮤지컬 배우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음악에 잔뜩 기울어진 장르임을 감안하자.
나는 예습보다 복습으로 문화를 즐기고 알아가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아무 생각 없이 먼저 보고 나서 나중에 그건 뭐였지? 하고 나중에 깨닫는다는 소리다. 어느 때엔 여러 번 경험하고 난 다음에야 알 수도 있고, 끝까지 무슨 뜻인지 모를 때도 있다. 역시 별 배경지식이 없이 먼저 오페라를 감상하고 그다음에 내가 느낀 것이 무엇이었는지 나중에 확인하고 또다시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감상해 본다. 그래도 오늘은 집에 와서 또 다른 버전의 오페라를 바로 한 번 더 보았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3막으로 이루어졌는데 오페라를 처음 감상하면서 여러모로 1막은 몰입이 어려웠다. 몰입을 힘들게 했던 여러 요소들은 아직 오페라에 익숙하지 않아서인 면이 크긴 하지만, 도통 끝까지 적응이 잘 안 되었던 부분들은 그다지 극복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먼저 성량의 차이랄까.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오페라이지만 공연장의 크기가 크지 않아 마이크를 사용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거기다 고음과 절정에 이르는 아리아 부분에선 마치 고함을 지르는 것처럼 느껴져 약간은 부담스럽다고나 할까. 특히 초초상의 아이, 아돌레를 안고 초초상이 아리아를 부를 때 저 아이의 청력은 괜찮을까 하는 걱정마저 들 정도였다.
뮤지컬은 연극적인 요소도 가지기에 대사가 잘 안 들릴 때도 있기는 해도 극의 전개와 전체적인 스토리를 파악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모든 대사에 음률이 있는 오페라는 언어를 모르면 대사가 파악이 잘 안 되는 단점이 자연스레 생긴다. 게다가 푸치니는 이탈리아인이고, 나비부인도 이탈리아어로 쓰였다. 취미로 이탈리아어를 조금 배우고 있어서 그나마 몇 개의 단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전체 곡을 미리 듣고 가지도 않았는 데다, 이탈리아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기에 자막이 없었으면 이해가 잘 안 되는 장면과 설정들도 많았다. 그래서 자막을 자꾸만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극장의 물리적인 형태 또한 오페라에 적합한 공연장이 아니라서 무대 양 옆의 모니터를 통해 자막을 확인해야 했다. 좌석이 앞쪽 가운데 자리였어도 무대만 바라볼 수가 없고 좌우로 고개를 돌리거나 눈알을 굴리는 통에 정신이 사나워져 몰입에 큰 방해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견디기 불편했던 것은 초초상이었다. 프리마돈나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나비부인의 역량이 필요한 이상 좀 더 어린 목소리와 외모에 부합하는 여주인공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감안해도 나비부인의 나이와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오페라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과거 나비부인의 초창기에도 15살의 어린 초초상의 나이 설정과 젊다 못해 어린 여인에서 시작해 아이를 낳고 모성을 가진 성숙한 여인이 되는 설정이 아리아의 곳곳에 나타나있는데, 이 때문에 캐스팅에 관한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에도 그랬는데 현재도 다르지 않게 오페라 속의 나비부인은 결혼식 장면에서는 15살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15살짜리 딸이 있는 여인처럼 느껴져서 부조리극인가? 하고 착각할 정도다. 극 중에서도 초초상의 나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대사가 나올 땐 실제로 소리 내어 웃는 관객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웃음은 초초상 역할을 맡은 프리마돈나의 외양을 보고 비웃는 되레 실례되는 웃음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겠다.
기모노는 보기에도 갖추어 입는 일이 매우 귀찮아 보일 정도로 겹겹이 입고, 여밈이 복잡하다. 국뽕이 아닐지라도 여타 문화보다 일본, 일본인, 일본문화에 관한 민족적인 거부감도 있다. 그러니 기모노도 그 거부감을 나누어 가진다. 일본 전통의상 위에 결혼식 복장으로 갈아입는 장면이 있었다. 극의 진행에 무리가 없게 하려 해서인지 기모노 위의 허리띠 장식 위에 다른 옷을 겹쳐 덧입었는데 그게 멀리서 볼 때는 모양이 조금 우습고 꼽추처럼 보여 보기 흉했다. 워낙에 등 쪽에 붙은 허리띠 장식이 도드라져있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해도 계속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유튜브에서 다른 공연들을 찾아보니 거기에서는 안에 옷을 미리 입고 벗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워낙 기모노가 겹쳐 입는 옷이라 풍채 좋게 보이고, 그 또한 썩 자연스러웠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얼마 전 뉴스에서 본 게이샤의 복장에서도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역시나 기모노 오비에 대한 낭설에 민족적인 거부감과 섞인 남의 나라에 대한 편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이런 편견을 깨닫고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자세가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여러 가지 방해에도 불구하고 2막을 거쳐 3막에 이르는 동안 나는 어느덧 오페라 속으로 들어갔다. 오페라 가 전해주는 방식으로 초초상의 스토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법을 깨닫게 되고, 초초상의 감정이 느껴질 것도 같다. 지금은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과 같이 각종 미디어에 익숙하니 자꾸 현실감과 개연성 없는 부분에 대해 쓴소리를 하지만, 그 옛날 TV도 없던 시절에 저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연기까지 하며 슬픔과 욕망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주니 얼마나 현실감 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프리마돈나의 역량이 오페라의 성패를 크게 좌우했다고 하니 마리아 칼라스나 미렐라 프레니가 부른 어느 개인 날도 듣고 싶고, 나가사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글로버 가든에 있는 푸치니의 동상과 함께 놓여있다는 모자상의 주인공 일본의 소프라노 미우라 다마키가 부르는 나비부인의 아리아들도 궁금해진다.
클래식 채널 라디오에서 가끔 나오는 오페라 아리아 일부는 들어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모두 조각이라 오페라의 전체 내용을 알고 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친김에 내가 아는 오페라의 제목들을 조금 더 찾아본다. 푸치니의 토스카에 나오는 별은 빛나건만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귀에 담고,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나 아이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줄거리가 무엇인지, 왜 그 아리아들이 유명한지 알아보기도 한다. 이처럼 익숙하고 여러 번 들어본 아리아들도 더 아름답게 느껴지고, 기억에 오래 남을 감동을 줄 것이다. 나도 이제 오페라를 즐기는 자세는 갖추게 될 것 같다. 구시대적인 드라마 전개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