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소리 Nov 17. 2020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는 알 수 없으므로

-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히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중에서


얼마 전 집에서 키우던 애완 기니피그를 사돈어른이 사시는 시골집으로 보냈다. 남미가 원산지인 이 녀석이 어떤 경로로 우리나라까지 왔는지는 몰라도 인근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애완동물 코너를 지나가던 우리 아이와 눈이 딱 마주쳐 세 달 전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한번 작심하면 당장 실행해야 하는 아이의 성화도 성화였지만 귀여움에 유난히 약한 아내의 섣부른 판단도 기니피그 입양에 한몫했다.

귀여움의 끝판왕 기니피그

처음 마트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사 올 때는 몰랐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우선 이 녀석은 식성이 매우 까다로웠다. 곡물로 만든 사료만 먹여서는 안 되고 다양한 야채, 과일도 제공해 주어야 한다.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우리 집 냉장고에 과일이 쌓이는 것은 순전히 이 녀석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녀석은 냄새가 고약해서 베란다에서 키우더라도 수시로 처소를 청소해 주어야 하고 환기도 자주 시켜야 한다. 이것이 영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또한 고양이 못지않게 털도 너무 날린다. 급기야 기니피그 청소를 도맡았던 아내가 콧물을 줄줄 흘리는 기니피그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애완동물 키우는 것이 다 번거롭고 어렵지 않은가? 이 정도는 당연한 수고로움일 수도 있는데 이 녀석은 사실 귀여운 것 빼고는 애완동물로서의 필살기가 부족했다. 애완견은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꼬리를 흔들면서 애교를 마음껏 발산한다는데 이 녀석은 평상시에는 그냥 '뚱'한 표정이다. 주인이 다가가도 별 반응이 없다. 먹이 줄 때만 약간, 정말 아주 약간 부드러운 눈빛을 보낸다.

만약에 세 달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기니피그를 애완용으로 사 오는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우리가 이 녀석을 시골집으로 보낸 것이 아니다. 우리 가족은 동식물에 대한 애착심이 많다. 햄스터와 토끼도 키웠으며 지금은 고양이도 키우고 있다. 그러니 우리 가족이 동물에 대해 야박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이 녀석이 시골로 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순전히 이 녀석을 위해서였다. 하루는 아이가 먹던 초콜릿을 이 녀석에게 주었는데 날름 받아먹더니 다음 날부터 설사를 하고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나서야 초콜릿은 절대로 주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 몰랐던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녀석이 있어야 할 곳은 갑갑한 아파트 베란다가 아니라는 것을. 남미의 초원을 뛰놀던 녀석이 시멘트가 깔린 아파트 베란다에서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았을까? 기니피그를 베란다에서 키우는 것은 잔인한 폭력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때마침 시골집에서 외롭게 살고 계신 사돈 어르신이 생각나서 그 집으로 이 녀석을 보냈다. 슬프기는 했지만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에 세 달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기니피그를 애완용으로 사 오는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선택의 순간에는 그 결과를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출생 빼고는 모두가 선택이다.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태어나서 직업도 선택하고 배우자도 선택한다. 심지어는 죽음도 선택할 수 있다. 선택의 순간에는 늘 고민이 따른다. '내가 지금 하는 선택이 올바른 선택일까? 이 선택으로 인해서 불행해지지는 않을까? 이것 말고 다른 선택은 할 수 없을까?' 하지만 선택의 순간에는 그 결과를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는 인생을 초콜릿 상자에서 초콜릿을 꺼내는 일에 빗대는 장면이 나온다. 흰 초콜릿이 나올지, 검은 초콜릿이 나올지, 달달한 놈이 나올지, 쓰디쓴 놈이 나올지 미리 알 수는 없는 것이다. 달콤한 초콜릿이 나오면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지만 씁쓸한 초콜릿이 나오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원래 쓴 초콜릿이 기억에 오래 남듯이 쓰디쓴 선택의 후회는 더 오래, 더 강하게 남는 법이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어떤 걸 가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노래 테이프처럼 리와인드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선택을 돌아봤을 때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를 현재에 와서야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안타깝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후회가 생긴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

돌이킬 수 없는 후회는 하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지금 알고 있는 로또 번호를 로또를 살 때 알았더라면'하고 온종일 후회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결혼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후회한다고 한다.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결혼을 하지 않든지 다른 사람을 선택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의 선택은 최선이었다. 벚꽃 아래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여자를 보았을 때 이 여자가 내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는데 나에게 한없이 친절을 베푸는 남자가 있을 때 이 남자가 항상 내 옆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배우자로서 어떤 점이 장점인지, 어떤 점이 단점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리고 모든 상황과 여건을 고려하여 그때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대학 선택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문학과를 선택했다. 즉흥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국문학과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를 알아보고 졸업 후 어떤 직업 선택의 기회가 있는지도 알아봤다. 이런 고민 끝에 원서를 넣었다. 나는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을 한 것이다.

당신이 과거에 한 모든 선택은 옳았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내가 과거에 한 모든 선택은 옳았다.'라고. 비록 지금 후회를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 속에서 당신은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다움을 찾아준 섬마을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