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

by belong 빌롱


사랑은 감각으로부터 시작해서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머릿속에서 솟아오르게 되어 있다면, 육체에서 타오르기 시작하여 영혼으로 번지게 마련이다.

영혼의 사랑을 위하여 육체적 사랑을 거부한다는 건 인간적인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욕망을 억제하고 자족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신이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존재라 인간도 그렇게 되면 신에 가까워질 수 있다며 무소유의 삶을 실현했다.

크라테스는 디오게네스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재산을 전부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금욕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문란한 성생활을 비난했고, 힘이 남아 돌아서 성욕을 억제하기 어려운 자는 먹지도 말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그는 자기 여제자인 히파르치아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도 했다.

그녀는 크라테스와 결혼 못하면 자살하겠다고 부모에게 협박했다. 그녀의 부모는 크라테스에게 히파르치아를 위해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자신은 무일푼인 사람이라 희망이 없다고 하니, 부잣집 딸인 그녀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지 옷으로 갈아입고 그를 따르겠다고 했다.

그 둘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

그의 사랑은 단순한 사랑의 불꽃이 아니라, 이성과 영혼을 앞세운 사랑이었다.


누구든 사랑을 외면할 수는 없다.

사랑이란 불같이 타올랐다가 꺼져가는 것이며 또한 두 개의 불꽃이 하나가 되어 거대한 불꽃이 되려는 것이다.

위의 사랑처럼, 사랑을 하되 조건이 없는 사랑이 있을까.

욕망이나 욕구가 존재하지 않는 이러한 사랑을 아가페의 사랑이라 한다.

이러한 사랑을 위해서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금욕과 경전, 절제와 수양으로 이루어진다.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을 거부해야 하기에 영혼을 오염시키는 것들에서부터 철저한 외면이 요구된다.

사랑도 인생도 불꽃이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걸 억제하기 위해서는 별다른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가능하다.


미론이라는 조각가는 머리와 수염이 이미 하얗게 물든 늙은이였다.

라이스라는 모델을 만났는 데, 그녀가 옷을 벗는 순간 반해버려서 재산을 다 줄 테니 하룻밤만이라도 함께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녀는 뿌리쳤다.

그는 젊게 변장을 해서 그녀를 찾아가 사랑한다며 매달렸지만 역시 퇴짜 맞았다.

이처럼 남자는 백지장을 들만한 힘만 있어도 여자와 관계하고 싶어 한다. 상대가 어떤 여자이냐가 문제일 뿐이다.

사랑은 육체가 아닌 마음에서 오는 것이기에, 마음이 움직이면 심장이 뛰고, 심장이 뛰면 온몸에 전율이 올라 전신의 혈관이 강한 피로 솟구친다.



사랑을 하는 이유는 무얼까?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서이다.

행복한 삶이란 기본적으로는 불행하지 않는 삶을 말한다.

그렇다면 불행이란 건 어디서 오는 가?

두려움과 아픔에서 온다.

이게 해방되어야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 악마와 괴물이 존재해서가 아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아무것도 두렵게 만드는 것이 없다. 단지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두려움 같은 우리 스스로를 옥죄는 걱정에서 만들어 나온 것들이다.

두려움과 아픔이 발생되는 것들은 많다.

사랑하면 결혼해야 되고, 결혼을 하면 가정을 갖고 배우자와 자녀들을 돌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돈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망이 생긴다.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두려움과 아픔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즉 욕망을 없애려면 가족이 없어야 한다. 그러면 사랑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기에 이 시대에는 40대에도 결혼을 안 한 남녀가 많은 것일까?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어서 그 나이 먹도록 결혼 안 하는 사람보다 의외로 능력이 있어도 결혼을 꺼리는 남성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아는 가?

후자 경우는 젊을 때 여성을 너무 많이 만나 본 자로서, 여성을 필요 이상으로 잘 아는 경우다.

그렇기에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들을 생각하기에 비혼주의로 사는 경우가 있다.

한 여자만 만날 자신이 없고 또한 책임지고 싶지도 않은 이유다.


아무런 의무나 책임을 지지 않고, 윤리나 사회 규범을 무시한 사랑은 퇴폐적 사랑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성행위 비디오를 찍는 그 자체는 참으로 퇴폐적인 거다.

진짜 여성을 사랑한다면 여성이 불안해하는 일은 애초에 만들지 않아야 한다.

실수고 뭐고 간에 그런 일을 벌인 남성은 어느 여성에게도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에 사귀는 남성과,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가기 전 내가 말했다.

"남자는 진~~~~~짜 사랑하는 여자랑은 관계를 할 수 없어"

그 남성은 나를 오션뷰의 고급 호텔에 재우고, 자기는 근처 저렴한 호텔 가서 묵은 기억이 난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그게 무슨 진짜 사랑이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순수한 사랑을 가진 자가 남자답고 기억에 남는 법이다.

둘 다 순수했기에 가능한 시절이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영화처럼 어느 날 만난 남녀가 진한 관계를 하고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그 기간이 일주일이든, 열흘이든, 한 달이든 간에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남자는 유부녀인 그녀를 놔주지만 둘의 사랑은 계속되었다는 걸 죽음 후에 알게 된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이 불륜 문제로 논란이 극에 달했음에도 여성들의 인기를 모은 이유는 무얼까.

"안나카레니나"처럼 물질이 풍부한 세계에 살지만 그런 풍요 속에서 느끼게 되는 따분함에는 짜릿한 감각이 필요했다.


신약 성경에서 나오는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아닐지라도, 이웃에 대한 사랑 같은 아가페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일까.

짜릿한 감각을 살려주는 사랑도 진정한 사랑일까.


개인적인 견해로는 책임질 수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한 면에서 영화에서 사랑한 두 남녀도 진짜 사랑을 한 것임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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