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 Jan 05. 2022

산책길에서 영감을 주는 영감님들

꾸준함을 존경합니다.

행복은 일상의 성실함에서 온다.

얼마 전 읽은 <트렌드 코리아 2022>에 나온 구절이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직장인들은 자신들만의 '루틴'을 지켜나가며 삶에서 작은 성취를 이어나간다. '루틴 routine'은 매일 수행하는 습관이나 절차를 의미하는 말이다. 스스로의 일상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요즘 사람들을 책에서는 바른생활 루틴이라 부른다. 큰 성공이 어려워진 사회에서 자아의 의미를 찾는 방법으로 루틴을 지키는 것이다. 


나도 한 가지 루틴을 갖고 있다. 실천한 지  3년 이상 된 루틴이다. 점심시간에 산책을 나가는 것이다. 한때 점심시간만 되면 피곤함에 절어 휴게실에서 잠만 잤었다. 이제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사무실 자리에 들러 이어폰을 챙겨서 곧장 회사 근처 천변길로 나간다. 짧게는 40분, 길게는 1시간 가까이 걷고 사무실에 돌아온다. 몸도 가벼워지고 졸음도 가셨다. 정말 무더웠던 한여름 며칠을 제외하곤, 거의 매일 빠짐없이 산책에 나섰다. 


3년여간 산책을 하며 나만의 코스를 개척해냈다. 아무래도 회사 근처다 보니 회사 사람들을 종종 마주쳤는데, 점심시간만이라도 나 혼자만의 온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티맵 내비가 된 것처럼 최적길을 찾아내어 이제는 산책하며 회사 사람들을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 확실히 더 리프레시가 된다.


매일같이 산책을 하면서 내심 뿌듯했다. 이제 나도 어디선가 당당하게 루틴을 지키며 살고 있다 외칠 수 있겠구나. <트렌드 코리아 2022>에 소개된 트렌드를 내가 실행해가고 있다. 트렌디한 MZ세대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산책하며 마주친 어르신들을 보며 뿌듯함은 고이 접어뒀다.


#1. 매일 뛰시는 영감님

마라톤 선수를 연상시키는 마른 근육질의 할아버지 한 분을 거의 매일 마주친다. 겨울에는 패딩을 입고, 그 외 계절엔 가벼운 민소매 티와 짧은 반바지, 다소 해진 운동화를 신고 할아버지만의 페이스로 천변길을 달리신다. 달리시면서 마주치는 동네 주민들을 만나면 할아버지는 잠시 멈춰 수다를 떨곤 하신다. 러닝으로 다져진 할아버지의 잔근육은 주름졌지만 세월의 풍화에 맞서 꿋꿋하고 단단하다. 


#2. 손녀들을 바라다 보는 영감님

내가 개척한 산책코스를 지나가다 보면 초등학교가 있다. 점심시간쯤이라 저학년은 내가 지나갈 때쯤에 하교를 한다. 노란 태권도 학원 버스,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마중 나와 있다. 그중 눈에 띄는 한 분이 계신다. 자전거를 끌고 오신 어르신. 쌍둥이인지 자매인지 비슷한 체격의 두 손녀딸의 하굣길을 마중 나오신 것이다. 자전거에 핑크색 가방을 고이 올려놓고서 사뿐사뿐 놀이터로 뛰어가는 손녀들에게 "천천히 가~" 하며 손짓하신다.

놀이터에 도착한 손녀딸들은 친구들과 뛰어놀고, 그런 손녀딸들을 할아버지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서 지그시 바라다보신다. 사랑이 담긴 눈으로. 


점심시간 산책이라는 루틴을 지켜나가며, 그 길 위에서 마주치는 영감님들은 내게 영감을 준다. 영감님들께서 루틴이란 단어를 아실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미 그분들의 삶엔 루틴이 베여있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삶을 채워나가고 계신다는 점이다. 어르신들을 보면서 일상의 성실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담배 피우고 김밥 싼 건 아니시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