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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Apr 20. 2024

"안녕, 피츠버그 그리고 책"

버스 정류장에 선 나의 작은 나무를 바라보며......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아침

베란다에서 정류장에 선 딸아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는 초록색 교복 블레이져를 입고 우산을 쓴 채  언제나처럼 책을 읽고 있다.

오늘 오렌지색 커버의 "클라라와 태양"이다.


그런 아이의 모습 바라보고 있자니

김용택 님의  “안녕, 피츠버그 그리고 책”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안녕, 아빠.
지금 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어.
마치 시 같다.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이 한 그루의 나무 같다.”


나의 작은 나무는 어느새 내 키보다 높이 자라 하늘로 여린 가지들을

뻗어 올리고 있다.


“사람들의 내일은 불투명하고, 나무들은 계획적이다.
정면으로 꽃을 피우지. 나무들은 사방이 정면이야, 아빠
아빠, 세상의 모든 말들이 실은 하나로 집결되는 눈부신 그 행진에 참가할 날이 내게도 올까”



어디로 얼마나 많은 꽃송이들을 피워낼지 모를 작은 나무.

불투명함 속에서도 실은 모든 것이 어떤 방향으로

계획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순간들.

스스로가 깨닫지 못할 뿐

나무는 그 내부에 꽃을 피우기 위한 계획대로 철저하게

자라나고 있다.



“나는 가지런하게 서서
버스를 기다려야 해.
이국의 하늘, 아빠,
여기는 내 생의 어디쯤일까?
눈물이 나오려고 해.
버스가
영화 속 장면처럼 나를 데리러 왔어.
아빠는, 엄마는, 또 한 차례
또 한 계절의 창가에 꽃 피고 잎 피는 것에 놀라며
하루가 가겠네. 문득문득 딸인 나를 생각할지 몰라. 나는 알아.
엄마 아빠의 시간, 그리고 나의 시간,
오빠가 걸어 다니는 시간들. 나도 실은 그 속에 있어.
피츠버그에서는 버스가 나무의 물관 속을 지나다니는 물같이 느려.
피츠버그에 며칠 머문 시간들이
또, 그래.
구름처럼 지나가는 책이 되어.
한 장을 넘기면
한 장은 접히고
다른 이유가, 다른 이야기가 거기 있었지. “



버스가 문을 닫고 출발했다.

남겨진 사람들 속에 딸아이가 있을까 걱정했지만  가지런한 아이의 두 다리가 사라졌다.

버스 안을 유심히 보니

용케도 기사님 옆 자리에

아이 교복 포켓의

빨간 학교 로고가 얼핏 보인다.


매일 아침이면 버스가 다리를 건너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섰다.

마음속으로 요란하게 외치며...


'오늘 하루도 신나고 안전할 거야...

너는 정말 멋지고 눈부신 아이야...

사랑한다 사랑한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내 아이를 실은 버스

학교로 향하는 버스


다음에 탈 버스는 내 아이를

어디로 데려갈까


다른 구간

혹은 다른 도시

혹은 다른 나라에서


아이가 탄 버스를 볼 수 없는

날이 오겠지.

내가 엄마 아빠 곁을 떠나

이 이국의 땅에서 버스를 듯.


그렇게 버스를 타고 떠나고

삶의 챕터를 채워나가며

꽃을 피울 준비를 하겠지.

어디로 피어나든 아이의 꽃은 향기롭고 아름다울 것이다.

사방이 정면인 나무는 어느 방향으로 꽃을 피워도 틀리지 않을 테니.



“나는 뉴욕으로 갈 거야
뉴욕은 터득과 깨달음을 기다리는
막 배달된 책더미 같아
어디에 이르고 어디에 닿고, 그리고 절망하는 도시야
끝이면서 처음이고
처음이면서 끝 같아.
외면과 포기보다 불안과 긴장이 좋아.
선택이 싫어.
아빠, 나는 고민할 거야
불을 밝힌 책장 같은 빌딩들,
방황이 사랑이고, 혼돈이 정돈이라는 걸 나도 알아.
도시의 내장은 석유 냄새가 나.
그래도 나는 씩씩하게 살 거야.
난 어디서든 살 수 있어.
시계초침처럼 떨리는 외로움을 난 보았어.
멀고 먼 하늘의 무심한 얼굴을 보았거든.
비행기 트랩을 오를 거야.
그리고 뉴욕.
인생은 마치 시 같아. 난해한 것들이 정리되고
기껏 정리하고 나면 또 흐트러진다니까. 그렇지만 아빠,
어제의 꿈을 잃어버린 나무같이
바람을 싫어하지는 않을 거야. ”



내 앞에 놓인 인생이 방금 배달된 책이라 여긴다면 ,

처음이 끝 같고 끝이 처음 같음을 터득한다면 ,

외면과 포기보다 불안과 긴장을 좋아하고

외로움과 무심함을 알고

바람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나무처럼 살아간다면 ,


아이는 한 편의 멋진 시를 지어낼 수 있으리라.


그 어떤 시라도 아름답게 읽히리라.


“아빠, 너무 걱정하지 마.
쓰러지는 것들도, 일어서는 것들처럼
다 균형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알아가게 될 거야.”



나의 작은 나무는 그렇게 삶을 알아가고 자라날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나무이기에

나는 나무를 바라보는 관찰자이며 동시에 한 그루의 나무이다.

언젠가는 책이 되어 책장에 꽂힐 나무.

이미 책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다음 챕터가 추가되고 있는

집필이 끝나지 않은 책.

나의 시도 아름답게 읽히기 위해

바람을 싫어하지도

쓰러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아야겠다.


“안녕, 피츠버그.

그리고 그리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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