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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줄박이물돼지 Sep 12. 2020

딸랭구 키우기 #18

딸랭구가 남기면 내가 먹는다

딸랭구가 어제부터 조개 요리해달라고 난리 부린 덕문에 마누랭구가 모시조개를 사 왔다. 미림 넣고 찐 다음 파스타 면을 넣었다. 아주 먹음직스러운 모시조개 술 찜 파스타가 완성되었는데,  미림이 상당히 달다는 걸 미처 몰랐다. 상당히 달달한 파스타가 되었고, 난 맛있게 먹었는데 딸랭구가 맛없다고 안 먹어서 어쩔 수 없이^_^ 내가 다 먹었다. 행복했다.


집안이 답답해서 바깥에 꼭 나가야 하는 할머니와 손녀는 저녁 먹자마자 노래를 부르며 나갔다. 우리 부부는 남아서 청소했다. 청소할 때마다 고래 등 같이 넓은 집에 잘도 살고 있다고 느낀다. 탄수화물도 잔뜩 먹었겠다, 집에 대한 사랑이 뻐렁쳐서 로봇청소기를 마다하고 손으로 걸레질을 했다. 자체 브금으로 look down 부르면 노예 갬성 터지면서 흥이 절로 난다. 무릎 아래 물걸레 하나를 깔고 바닥을 누비면서 한 때 유행하던 AB 슬라이더 밀듯 열심히 걸레질했다. 복근이 수축 이완하며 마룻바닥이 빤딱빤딱하게 닦였다. 좀 과하게 열심히 했는지, 무릎 피부가 살짝 까질 정도였다. 허리가 좀 아파서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딸랭구가 찾아왔다. 딸랭구는 아빠 녀석 방에서 뭐하고 자빠졌나 보러 온 것 같았다. 딸. 아빠 좀 안아줘. 했더니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더니, 안 안아줄래! 하고 도망갈 태세를 취했다. 호다닥 도망가지 않고 슬금슬금 도망가길래, 랭구가 안아주면 아빠 기분이 아주 좋을 거야! 했더니 다시 돌아와서는 그럼 어쩔 수 없지 하는 표정으로 침대에 올라왔다. 내 위에 올라타고 뭐라 뭐라 깽깽거리다가 수하들을 데리고 와야겠다며 냥이 인형, 공룡 인형, 토끼 인형을 데리고 왔다. 걔들의 이름은 냥이, 키오, 토순이다. 아빠랑 랭구랑 나머지 셋이 같이 자야 한단다. 조그만 슈퍼 싱글 사이즈 침대는 84kg짜리 거한 하나 감당키 어려운데, 그의 몸통만 한 딸랭구와, 딸랭구의 몸통만 한 인형 두 개가 올라와서 이불 덮는다고 난리를 부리고 있으니 너무너무 좁았다. 내 몸통은 침대를 벗어나기 직전이었다. 딸랭구가'아빠, 좁으니까 조금만 더 옆으로 가줄래?' 했다. 흉포한 우리 딸랭구답지 않은 정중한 부탁이었으나, 조금 더 가면 떨어지고 말 지경이었다. 자리 없어서 못 간다고 하면서 인형들이랑 마구 뒹굴었다. 딸랭구가 이렇게 품 안에서 꼼시락 대면 귀여워서 숨이 멎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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