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랭구 키우기 #19
1.4춘기를 맞은 사나운 딸랭구
어제 퇴근했더니 장인어른께서 와 계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모두 있어서 딸랭구 기분이 아주 좋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른들 표정이 다 좋지 않았고 딸랭구는 엄마한테 시비 털고 있었다. 애기를 키워본 적 없는 사람들은 애기가 얼마나 악랄하게 시비 거는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애가 각 잡고 시비 털 때는 숨 쉬는 횟수랑 지랄하는 횟수가 같다고 보면 된다. 안 놀아준다고 지랄해서 엄마가 놀아주러 가면 근처에 오지 말라고 지랄, 조금 떨어지면 왜 안 놀아주냐고 지랄, 짜증 내지 말라고 하면 짜증 낸 거 아니라고 지랄, 혼낸다고 하면 혼내지 말라고 지랄. 세상의 모든 지랄을 다 모은 존재가 된다. 1.4춘기라 하겠다. 어제 바로 그 재앙이 강림하셨다. 그런데 의외로 나한테만 예쁘게 굴었다. 내가 오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잠자는 놀이를 했다. 우리 딸랭구 제일 이쁠 때는 자고 있을 때, 그다음 이쁠 때는 잠들기 직전에 졸린 상태로 꼼시락대고 쫑알쫑알할 때인데 딱 그 잠들기 직전이 죽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손바닥 써서 인디언 소리 내는 법도 알려주고, 팔뚝에 딱딱한 게 닿길래 이거 랭구 척추뼈야? 했더니, 척추뼈는 몸에 해로워! 하길래 척추뼈 없는 삶에 대해서 겁도 주었다. 겁주는 데도 너무 좋아했다.
우리 마누랭구는 바깥에서 부녀의 수작질을 들으며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하루죙일 짜증 내던 애가 아빠 방에 들어가더니 깔깔깔깔 웃으면서 애교 부리고 있으니 분한 마음마저 들었던 것 같다. 본인이 딸랭구한테 뭐 잘못한 게 있는지 고민할 정도였다. 애기가 밖에서 제대로 나가 놀지 못해서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답답하다. 얼른 컸으면 좋겠는데 레알 사춘기가 오면 지금보다 더 키우기 힘들 것 같아서 두렵다. 네 살짜리 키우면서 뭐 벌써 사춘기 걱정을 하나 싶겠지만, 사춘기의 절정을 맞는 중2, 열다섯 살까지 11년밖에 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