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시티에 도착했을 때, 이 도시를 캐나다에서 가장 좋아하게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야말로 이름도 멋들어진 Fleuve Saint-Laurent (생로랑 강)이 도시 앞에 흐르고 잘 보존된 성곽 너머로 샤토 프롱트냑의 청록색 지붕이 보이던 퀘벡 시티는 축제로 인해 중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15년이 지났지만 지금 봐도 대단한 축제였다
지갑 속이 공허하여 가장 싼 호스텔의 가장 나쁜 방에 묵으며 조식으로 주는 식빵을 챙겨 점심, 저녁까지 해결하던 처지였으나 중세 유럽과도 같은 풍경에 심히 고양되었고, 평소라면 듣지도 않을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까지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파이프 오르간은 나의 미천한 음악 공력으로도 꽤나 친숙한 악기였다. 후뢰시맨에 나오는 대 박사 리 케프렌이 파이프 오르간으로 유전자 정보를 조합하여 괴수들을 만들어 내곤 했던 것이다. 어떤 경로로 웨슬리 교회 파이프 오르간 리사이틀 일정을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인근의 유명한 교회라서 들어갔는데 마침 리허설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들었던 음악 소리는 후뢰시맨 최종 보스인 라 데우스 형의 새하얀 가면과 오페라의 유령의 새하얀 가면과 아무튼 새하얗고 경건하지만 의미심장한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나게 했다. 그래서 꼭 본 공연을 직접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파이프 오르간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고 있었는데, 가끔은 같이 다니는 게 답답해서 따로 행동했다. 그날도 따로 행동하고 있었다. 나는 일찌감치 교회에 도착해서 2층 3번째 줄 정도에 자리를 잡았다. 이내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남자 둘이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고 친구들은 조금 늦게 와서 거의 맨 끝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시작되었는데, 3분을 버티지 못하고 까무룩 의식을 잃었다. 역시 나의 모자란 교양력으로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 완상은 무리였던 것이다.
고개를 꾸벅이며 졸다가 문득 쪽팔려져서 뒤에 있는 친구들을 확인했다. 친구들은 무슨 귀신 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른 나가자는 제스처를 보내왔다. 흠, 이놈들 교양력이 상당하군. 졸지 않다니. 근데 왜 갑자기 나가자는 거지? 생각하며 앞을 봤는데, 팔 뻗으면 닿을 거리에 식은땀 나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내 앞에 앉아있던 이들은 아주 건장한 남자들이었는데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었다. 그의 두툼한 가슴 위에는 못지않게 두툼한 다른 남자의 손이 올라가 있었다. 그 손가락들은 남자의 두툼한 가슴에 비해 무척 작을 것이 분명한 돌기를 더듬고 있었다. 앉은 남자의 손가락이 옳은 곳을 스칠 때마다 누워있는 남자는 홍조를 띠며 좋아했다. 누워있던 이는 이따금씩 복근에 힘을 가해 몸을 일으켜 앉아있던 이와 입술을 가까이했다. 사실 입술만 부딪힌 게 아니었다. 그들의 혀는 서로의 뇌수를 탐닉하는 촉수처럼 서로의 입속으로 깊숙하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교회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으면서 보기에는 너무나 불경한 장면이었다!
15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로 대단히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게이라면 치를 떨었는데 첫 만남이 너무 징그러웠기 때문이다. 나 같은 이성애자가 이성과의 신체 접촉을 아름답다 생각하고 동성과 신체 접촉을 기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야.
나는 어쩌면 운이 좋게도 이후에 게이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고, 첫 조우에서 생겨난 혐오감을 대부분 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친구 중 하나가 게이들을 무척 혐오하는 발언을 했다. 이태원 게이바에서 코로나가 번진 사건 때문에 게이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가 말하길, 게이들이 본인을 강간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무섭고 싫다는 것이었다. 무슨 개소리야! '할 수 있다'랑 '한다'는 엄연히 다른데, 할 수 있다는 가능성 만으로 혐오한다면 세상 여자들이 모조리 남자를 혐오해도 된다는 거냐? 비겁한 소리 말고 그냥 징그러워서 싫다고 해라!고 말했더니 두말하지 않고 수긍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