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9984와 9434의 교환비가 3.3까지 내려왔다. 3.3 정도면 코로나급 위기 아닌 바에야 다시 볼일 없다고 여겼던 숫자인데 왔다. 일단 1개는 돈 좀 보태서 무지성으로 교환했는데, 해놓고 보니 21일에 주담대 원리금 상환을 막을 길이 없었다. 한국 주식을 팔아야 했는데 원리금 상환 전까지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을지 암담해졌다. 9434는 1519엔, 9984는 5102엔에 거래했는데 잠깐 고민한 새 9984가 좀 올라서 교환비가 살짝 나빠졌다. 조금 더 고민하다가 할 일이 있어서 생각이 끊겼다. 집중해서 오래 고민하기 힘들다. 가장 큰 문제는 핸드폰이다. 자꾸 본다. 애도 문제였다. 칭얼대는 애기랑 부대끼면서 뭔가 해결해야 할 일이 남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어서야 생각해 보니 좀 더 바꾸는 게 옳았다. 그날 밤엔 분위기가 반전되어 알리바바 ADR이 떡상하더니 다음 날인 12월 7일이 되어 9984도 떡상하면서 어제와 같이 좋은 교환비에 9434를 9984로 바꿀 기회가 날아갔다. 못내 아쉽고 약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슈톨렌을 사러 갔다. 슈톨렌은 Flanuer 님 블로그에서 처음 봤는데, 아주 맛잘알 친구 SNS에도 먹었다고 올라오길래 구글 맵에서 검색해서 파는 곳을 알아냈다. 마침 오늘은 외근이라 점심 먹고 부지런히 걸어서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할 일이 참 많은 날이었다. 아침에는 한국투자증권 가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속으로 인사드리고 해외 주식을 전부 키움으로 빼왔다. 올해까지는 증권사들이 돈잔치를 푸짐하게 열어주어서 꿀 빨았는데 내년에는 체리피킹이 다소 어려워질 전망이다. 별 근거 있는 전망은 아니다. 증권사들이 1년 넘게 이 짓을 했으면 주식을 한 번 옮겨서 꿀을 빨아본 사람들이 그대로 눌러앉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을 것이다. 실제로 한투도 이벤트 금액이 1/5로 줄었고 해외 주식 영업을 가장 크게 해왔던 미래에셋도 이관 이벤트는 뜸하게 하는 기분이다. 내년에도 다른 증권사들이 못 배운 친구들로 남아준다면 너무 고맙겠다. 올해는 여러 증권사들의 소소한 기여와 한투의 큰 은혜로 250만원 정도를 받았고 그 중 22%를 제세공과금 명목으로 국가에 납부하여 부국강병에 기여하였다. 한투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떠올리니, 대체출고 신청하면서 어찌나 염치가 시리던지 직원분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다. 사정을 알 길 없는 직원분은 그저 친절하고 신속하게 모든 주식을 키움으로 출고시켜주셨고, 그 친절한 모습에 시린 염치마저 파하고 추가 요청도 드렸다. 혹시 저희 마누랭구 ISA 계좌 서민형으로 전환될까요? 혹시 무슨 서류 필요한지 아세요? 네. 제가 여기 다 가지고 다녀요. 이 전환은 11월부터 계속 깜박하다가 12월까지 왔다. 그러고보니 운전자 보험 탈퇴도 까먹어서 입맛이 쓰다. 그동안 보험계약대출로 튀겨먹은 걸 생각하면 납입 금액이 아까울 정도는 아니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운전자 보험이 무슨 필요란 말이냐? 운전도 잘 안 하는데. 여하튼 이번에도 해지를 까먹어서 환불받기 귀찮다는 핑계로 1년 더 한다. 마치 가상화폐 과세 유예처럼 1년 더 한다는 말씀! 필요한 일을 미루다가 어영부영 1년 더 하는 일들은 대개 나처럼 게으르고 줏대 없는 녀석들이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달 넘게 고이 간직해왔던 서류를 내고 마누랭구의 ISA 계좌 서민형 전환도 성공적으로 마무으리 되었다. 서민, 서민, 서민. 우리 마누라 이제 내가 주식 증여하면 계좌 깨나 부풀 텐데 서민이라니. 어제 빠숑님과 월천대사님의 유튜브 라이브가 생각났다. 집 살 생각을 하면서 이 방송을 들을 정도 수준이면 서민 프레임에서 얼른 벗어나야 한다고. 그건 맞지. 이 시대의 서민은 이미 전세도 못 살고 월세 산다. 문정권 집권 말기에 부동산 시장이 이지경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전세 자꾸 올라가는 데 집을 콱 사버려? 따위의 부자스러운 고민하는 사람들은 서민이라 볼 수 없다. 어쨌든 우리 마누랭구는 수입이 없어서 서민이다. ISA 서민형은 혹시 가사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제도가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그러다가 국가에서는 어떤 사람이 집에서 애보고 집안일 빡세게 하는지, 혹은 돈이 많아서 사람 불러서 일 시켜놓고 탱자탱자 노는지 알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방법이야 사실 많겠지만, 국가도 다른 중요한 할 일이 있을 텐데 저런 일이나 하고 있어야겠어? 저런 쓸데없는 색출 작업은 재난 지원금을 소득 분위로 커트해서 주는 헛짓거리에 비견할만하므로 ISA 서민형 여혐론은 날쌔게 커트. 이제 우리 마누랭구는 1년에 400만원의 배당금을 비과세로 받을 수 있는 잠재력 강한 서민이 되었다. 2000만원으로 4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초고배당주 이리 오너라. 예. 신영증권 대령이요. 네가 작년에 주당 4천원을 줬던데, 올해는 만원을 퍼줄 수 있겠느냐? 그건 어렵습니다. 주당 4천원만 받으셔도 시가로 배당률이 6.5%가 넘습니다. 어허? 무엄하다. 네가 감히 내 뇌를 청순하게 보는가! 대머리 사기꾼의 ATM, 소프트뱅크 C가 한 때 시가 기준 8%까지 배당을 준 적이 있거늘, 증권회사 돈 잔치하는 것을 일 년 내내 봐 왔던 사람에게 그 무슨 버크셔 배당 뿌리는 망발인가!? 님 개소리 마시고 아직 주주 아닌 거 다 압니다. 현대건설로 강해져서 돌아오십쇼. 네. 알겠습니다! 현대건설 화이팅! 한국투자증권 창구 직원분께서 서민형 전환 처리 해두겠다고 하셨을 때, 나는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청 좋아하시네요? 네. 좋아요. 제가 이걸 하도 까먹어서 해결된 게 너무 좋아요. 그 직원분은 ISA 서민형 전환 같은 단순 업무를 완료하고 테슬라 500주 얻은 사람처럼 좋아하는 손님을 처음 보셨을 것이다. 그분께서 조금이나마 직업적 만족을 느끼셨길 바라며 감사의 말씀 올리고 나왔다. 그리고 일 좀 하다가 슈톨렌 사러 갔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사러 간 얘기다. 1.5km 정도 걸어가는 바람에, 도착해서는 좀 더웠다. 내 앞으로 사람이 3명이나 들어가길래 저 사람들 다 슈톨렌 사러 왔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잔뜩 남아있어서 여유 있게 하나 고르고 크로아상 찾아보니 없어서 무화과 빵 하나 집었다. 슈톨렌은 4만원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비싼 빵이었어? 어쩐지 주변에 먹어본 사람이 별로 없더라니. 다시 냅두고 나올까 살짝 고민하다가 멀리 걸어온 게 아까워서 똥꼬에 힘 잔뜩 주고 계산대로 갔다. 비닐봉투 드릴까요? 50원입니다. 하시길래 순간적으로 50원이 아까워서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명백한 실수였다. 슈톨렌은 꽤 무거웠고 한 손으로 달랑달랑 들고 갈 크기도 아니었다. 게다가 무화과 빵 하나 사는 바람에 더더욱 운반이 곤란했다. 슈톨렌 서빙하는 사람처럼 양손으로 들고 1.5km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지만, 카드 결제가 끝나기 전에 봉투 달라는 말을 순발력 있게 못했고, 카드 결제가 끝난 다음에 봉투 달라는 말도 용기 있게 못했다. 나는 결국 그 정도 사내에 불과했다. 판단이 흐리고 느리며 옳은 판단을 하고서도 실행할 용기가 없는 사내였다. 어제 내게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주어졌어도 9434를 9984로 싹 다 바꾸진 못 했을 것이다. 어제부터 관자놀이를 짓누르던 아쉽고 약오른 번뇌를 씻는 순례자처럼 슈톨렌을 양손으로 들고 걸었다. 퇴근 후에도 어찌저찌 슈톨렌을 비닐봉지 없이 집까지 잘 옮기고 50원 아꼈으니까, 이 고행의 염원을 대머리 사기꾼 아조씨가 잘 들어주셔서 내년 6월엔 9984가 2만엔 되길 바린다. 그러면 더 이상 비닐봉투 수령에 망설이지 않는 남자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