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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줄박이물돼지 Sep 04. 2020

딸랭구 키우기 #2

평범한 수준의 아빠 육아조차 고난의 행군일세

평범한 수준의 아빠 육아조차 고난의 행군일세

딸랭구한테 뜨거운 음식 줄 때 뜨거우니까 후후 불어 먹으라고, 불어 후후후 하면 빨간 불티야 하고 잇는다. 태연 노래다. 애들은 다 따라 한다 증말.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라고 한다. 아빠는 요새 스왕스왕 좋아해. 엄청 어릴 때는 Rumor라비앙로즈좋아했는데 요샌 언니들 보는 거 싫대. 아이즈원이 유사 펭귄보다 훨씬 이쁜데... 그래서 딸랭구 있을 땐 아이즈원 못 본다. 애기를 좋은 사람으로 키우려면 부모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첫째다. 일단은 애기 앞에서 유튜브 안 보는 아빠다.


어젠 딸랭구랑 마누랭구랑 성복 롯데몰에 갔다. 원래 주말 식량 확보를 위해 이마트 트레이더스 가자고 했는데, 뭘 살지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비도 오고 그래서 안 갈까 했더니 딸랭구가 수레 타러 가잔다. 까먹지도 않아. 가장 가까운 트레이더스는 구성역 근처 트레이더스인데 거긴 주변 도로 사정도 별로고 주차장 공기도 매캐하고 영 파이다. 그래서 성복 롯데몰 가자고 했는데 우리 마누라는 걍 트레이더스 가자는 눈빛을 보냈다. 마누랭구는 오픈 초기의 번잡했던 기억과 롯데몰 내부 식당들에 대한 맘카페의 악평들을 보고 가기 싫었던 것이다. 안돼안돼. 사람이 새로운 곳도 자꾸 가봐야지 우겨서 롯데몰 갔다. 다행히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한산했고, 밥 먹고 가서 식당 이용할 일도 없었다. 트레이더스에 비하면 공기도 쾌적하고 예쁜 가게들 많아서 좋았다. 사람 너무 적어서 망할까 봐 걱정되었다. 이런 몰은 임차인들이 하나둘씩 빠지게 되면 금방 볼품 없어진다. 90년대를 풍미했던 지역 백화점 꼬라지 나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그런 곳들은 아울렛으로 변해서 연명하다가 알만한 메이커들은 다 빠졌고, 내부가 어두침침 슬럼 하며 불법 보조금 많이 주는 핸드폰 매장 아니면 손님이 없다. 롯데야, 좀 잘하자? 응? 근처에서 그나마 갈만한 곳인데 잘 좀 유지해줘라.


먼저 마누랭구가 가고 싶어 하던 팅굴마켓에 갔다. 마누랭구 구경 좀 하라고 두고, 딸랭구를 이끌고 다녔다. 오만 물건 다 만지고 댕기다가 큰 기린 인형이랑 좀 놀더니 이내 엄마가 없어진 걸 알았다. 딸이 내 손을 잡고 아빠! 마누라를 찾으러 가자! 아빠가 사랑하는 마누라 어딨어! 외치며 끌고 다녔다. 좋은 부모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새삼 느꼈다.


주차비를 까려면 물건을 사야 해서 무인양품에서 필요한 걸 샀다. 롯데마트 가서 수레 태워주려다가, 애기들이 손잡이로 미는 애기용 차를 많이 타는 갈 봤다. 어디서 빌려주는 데가 있나 찾아보니 롯데 멤버쉽만 있으면 3층 유모차 빌리는 데서 빌려준다. 우리 애기는 분홍색 폭스바겐 미니 버스를 받았다. 차를 받고 애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외제차 뽑으니 좋더냐. 렌트카야. 차를 밀고 다니다 보니 무료 놀이터가 있어서 거기서 또 신나게 놀았다. 본인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놀더라. 돌아오는 길에 잠들려고 하는 걸 살살 깨워가면서 집에 왔다. 아빠에 대한 사랑이 뻐렁쳤는지, 엄마랑 아빠랑 냥이랑 넷이 같이 자자고 하더니, 누워서 좀 비비적거렸더니 만지지 말고 나가랜다. 매몰찬 계집애. 방에서 쫓겨나서 아이즈원 봤다. 개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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