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랭구 키우기 #4
평범한 수준의 아빠 육아조차 고난의 행군일세
어머니 생신이었다. 집에 초대해서 생일상을 차려드리기로 했다. 마누랭구는 아침부터 식재료를 사러 갔다. 집에 남아 딸랭구를 봤다. 마누랭구가 나가면서 티비 틀어줄 거야? 물어봐서 뜨끔했다. 티비 틀어주면 너무너무 쉽다. 티비는 내게 자유를 준다. 엄청 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아빠들한테 애 보라고 맡겨놓고 가면 다들 티비 틀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지 않은 아빠들도 물론 많겠지만, 전통적으로 아빠들의 상징은 티비였다. 우리 아부지도, 장인어른께서도, 남자는 집에 오면 항상 티비 전원부터 올리는 게 국룰이었다. 난 그게 참 싫었다. 내가 애 키울 땐 안 그래야지!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편해지고 싶은 강력한 욕구를 이겨내는 건 정말 어려웠다. 그래도 이번엔 이겼다. 딸랭구가 책 읽자고 가져와서 네 권 읽어주고 마누랭구 귀가까지 버텨냈다.
마누랭구가 요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딸랭구 낮잠도 내가 재우게 되었다. 밖에 나가지도 않아서 에너지 소비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잠을 안 자려고 버틸 것 같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잔다고 해줬다. 티비 안 틀어주고 놀아주며 책을 네 권이나 읽어준 보람이 있구나. 그래. 아빠도 어제 뻘글 쓴다고 늦게 자서 피곤한데 함께 자자! 하고 불을 껐는데 그 이후로 두 시간 동안 안 잤다. 첨에는 지도 잠을 좀 자보려고 한 거 같은데, 잠이 안 오니까 그때부터 안 자고 놀겠다 선언했다. 불을 껐다 켰다 사이키를 만들고, 나가서 놀겠다고 앵앵 울고, 나한테 물리력도 행사해보고, 온갖 짓거릴 다 했다. 아무튼 잠자기 싫으니 밖에 내보내 달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밖에서는 마누랭구가 시부모 생신 대접을 위한 요리와 사투하고 있었다. 딸랭구를 문밖으로 내보내는 순간, 넓은 곳으로 풀려난 거악(巨惡)이 초래할 결과는 자명했다. 어머니 생신 요리를 다 망치게 될 것이다. 나는 나당 연합군을 막아선 계백의 오천 결사대와 같이 딸랭구의 탈출을 저지했다. 달래기도 하고 협박도 해봤는데, 그 수많은 협박과 달램 중에서 의외로 가장 잘 먹혔던 건, '아빠랑 같이 잔다고 약속했잖아'였다. 약속을 지키려는 내적 동기가 과자를 안 준다는 협박보다도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특했다. 하지만 방 안의 전쟁을 소리로만 감상하던 마누라가 견디지 못하고 문을 열어주면서 전쟁은 딸랭구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나가보니 내가 요리할 시간이었다. 나도 고기 요리 하나를 준비해야 했는데, 방 안에는 시계가 없으니 두 시간이나 그렇게 버틴 줄 몰랐지.
어머니 생신이랍시고 고기도 먹고, 잡채도 먹고, 케잌도 먹어서 몸무게 많이 늘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이 안 늘어서 다행. 글 쓴다고 머리 써서 그런가 보다. 오랜만에 각 잡고 글 썼는데 엉망진창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딸랭구가 요새 엉망진창이라는 단어도 좋아한다. 우리 딸랭구에게 '엉망진창'은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모습이란 뜻을 가진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아빠, 엄마 다 모여있네! 엉망진창이네!라고 얘기함. 이 녀석 혹시 뜻을 정확히 알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