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랭구 키우기 #5
평범한 수준의 아빠 육아조차 고난의 행군일세
전날 늦게 잤는데, 딸랭구가 좀 일찍 깼다. 엄청나게 일어나기 힘들었다. 아침 대충 먹고 개울가에 산책 갈 때까지도 정신을 못 차렸다. 그래도 좀 움직이다 보니 활력이 생겼다. 섬서구 메뚜기를 잡아줬더니 처음에는 좀 무서워하다가 나중엔 혼자서도 잡더라. 사마귀를 잡아줬더니 징그러워! 했다. 사마귀 종령 애벌레 따위를 징그러워해선 집안 출몰 벌레 중 끝판왕인 바퀴벌레와 그리마에 대적할 수 없다. 좀 더 강하게 키워야겠다.
개울을 따라 걷다 보니 신이 나서 계획보다 멀리 갔다. 구글 맵에 카페를 쳤더니 토다의 숲이라는 곳이 나왔다. 평점이 좋아서 가보려고 했는데 구글 맵에 나온 위치와 실제 위치가 조금 달랐고, 폭염 속에서 애를 데리고 걸어가기엔 너무 멀었다. 돌아가기에도 너무 먼 곳까지 와 버려서 더위에 녹아내리기 직전인 마누랭구를 추슬러서 억지로 도착했다. 집에 어떻게 돌아갈지 막막했지만, 택시를 부르거나 나 혼자 집에 뛰어가서 차 가지고 다시 오면 된다고 편하게 생각했다.
카페 내부는 복층 구조에 책도 잔뜩 꽂혀있어서 꽤 마음에 들었다. 야외에 무료 방방도 있고, 해먹도 있어서 애기랑 놀기 좋았고 눈꽃 빙수마저 꽤 맛있었다. 마누랭구는 폭염에 반쯤 녹아버려서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딸랭구랑 둘이서 방방을 탔다. 둘이서만 한 30분 탔다. 다른 애기들이 올라오려고 하면 구석으로 비켜서 올라오라고 했는데 덩치 큰 시커먼 아저씨가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애기들에겐 너무 큰 위협이었나 보다. 덕분에 30분 동안 점핑 다이어트했다.
카카오 택시도 안 잡히고 내가 집에 갔다가 오면 딸랭구 점심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결국 걸어가기로 했다. 딸랭구는 출발 직전에 똥을 싸면서 우리 부부를 난감하게 했다. 가볍게 동네 산책 나온 길이라 여벌 기저귀도 안 가져왔거든. 게다가 다리 아프다고 안아달래서 기저귀 안 찬 딸랭구가 오줌을 쌀지도 모른다는 위험 속에서 1km 정도 안고 갔다. 요새 운동해서 그런지 생각보단 할만했다. 마누랭구는 양산으로 딸랭구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부채까지 부쳐주며 걸었다. 폭염주의보 떠서 쪄 죽게 더웠는데 딸랭구만은 조금이라도 시원하라고 극진한 정성을 쏟았다.
잠들기 전에 티비를 좀 보여주는데 딸랭구가 와서 내 옆에 착 붙어있었다. 요 쪼끄만 계집애는 뜨뜬한 체온마저 귀엽다. 신나게 놀아준 보람을 느꼈다. 육아에 투입한 인풋은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예뻐한 만큼 예쁜 짓을 해준다. 다만, 인풋 대비 아웃풋 효율은 엄청나게 나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