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시대 7

용궁에서 온 그 남자

by Hu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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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러니까……. 물고긴 자궁 속 태아랑 다를 바 없다 그 말이외다. 태아의 뇌가 몸에서 느껴지는 자극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물고기도 그렇단 얘기지. 말하자면 머릿속에선 자극받은 것을 그저 기록만 할 뿐.”

“잉? 얼라덜도 물괴기 맹키루 아푼 걸 모른다는 거여, 시방? 근디 막 태어난 눔 방댕이를 냅따 후려치면 워째 우는 겨?”

물개수염의 중늙은이가 사내의 말허리를 자르고 나섰다.

“그거야 뇌가 완전히 성장한 갓난아기니깐 고통을 느끼는 거 아니겠소.” 귀찮다는 듯한 대꾸였다.

“뱃속에 있는 놈이 무슨 하등 벌레라도 된단 소리로 들리는구먼.”

“뭐 아니라할 순 없소이다. 임신한 지 9개월이 안 된 태아는 뇌의 신경조직이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요. 그래서 몸에 있는 신경이 자극을 받아도 그 느낌이 머리까지 전달되지 않는 거외다. 단지 자극의 흔적만 머릿속에 저장될 뿐. 그 점에선 벌레든 물고기든 태아든 다를 바 없지. 몸뚱이는 느끼고 머리는 기록만 하고.”

나는 사내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보았다. 생판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닌 것만 같았다.

“가령, 불에 데면 앗 뜨거워하는 게 아니라 체온보다 높은 온도로군 하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얘긴가?”

“노인장은 제법 말이 통하는구려. 그렇소, 태아와 물고기는 전자계산기처럼 입력되는 자료만 머릿속에 저장하는 겁니다. 눈과 귀, 코와 입, 그리고 몸뚱이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자료를 말이요.”

사내의 말은 또박또박 조리가 있었다. 옆에 있던 양복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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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네 물괴기 대가리에 뭐가 있다캤제? 하이튼가네 물괴기 대갈빼기에 있는 거 때문에 고양이맹키로 그렇게 씹어싸능기가?”

“그렇소이다. 이놈들 대가리 속에 담긴 기억을 깨끗이 지우려는 거요.”

그 말에 내가 대체 무슨 기억이기에 그러냐고 캐물었다.

“용궁 정권 축출 계획 말이오. 이번엔 실패하지 않을 거…….”

사내는 이번엔 그릇째 남은 생선대가리를 한입에 털어 넣고 아드득거렸다. 그러더니 가시가 목에 걸렸는지 갑자기 캑캑대면서 눈물을 짰다.

“아이고, 어쩐다냐!”하고 부엌에서 주인 노파가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스레 달려 나왔다.

“긍께 대그빡은 하나씩 아구지에다 여갖고 오래오래 묵어야제. 목구녕에 괴기 까시 걸린디는 쌩무시가 직빵인디. 쌩무시 쪼까 드실라요?”

노파의 한 손에는 누렇게 시든 무 하나가 들려있었다.

“저리 치워요!”

사내가 진저리를 치며 와락 노파를 떠밀었다. 그 바람에 노파는 벌렁 뒤로 나가자빠지고 말았다.

“아이고메, 나 죽겄네!”하고 징징 쥐어짜는 노파의 푸념이 막았던 봇살같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놈이 애먼 사람 죽일라고 환장을 했는가벼. 저승길도 박복헌 팔자에는 호강살이라꼬. 콧구녕만한 가게서 겨우 통막걸리를 받아다가 잔술로 팔고, 쐬주나 한 병씩 팔면서도 넘한테는 궂은 소리도 안듣고 넘한테 해꼬지도 안허고 살았는디. 인자 빙신이 되야갔꼬 자리잡고 들어눠서 벼루빡에 똥 바르다 가게 생겨부렀네.”

“할매, 엄살도 앵간히도 하라 마.”

양복쟁이가 짐짓 화난 소리로 퉁을 놓았다. 악에 받친 노파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뭐시여, 시방 엄살을 부린다는 거시여? 저 작것이 꽉 오글처부러갔꼬 이라고 허리가 뿐지러질라고헌디. 긍께 뭐땀시 가만히 있는 사람을 자빨세부냐 그 말이여?”

“미안하게 됐소이다. 무를 끔찍이 싫어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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