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에서 온 그 남자
12.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그라. 저승서 당산나무맨치로 꿈적도 않던 동해용궁따님애기가 뭐할라꼬 이승으로 나오겄나?”
한참 만에 양복쟁이가 나직이 기침을 하고는 동의를 구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옆에서 주인노파가 거들고 나섰다.
“그라제, 삼승할매야 애기 점지헐라믄 이승에 와야제만 저승할매는 북망산 지켜야 안허겄소.”
“증거가 있소이다.” 사내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수레멜망악심꽃이 용궁 문 앞 팽나무에 핀 걸 보았거든.” 이 말에 술청 안에는 동요가 일었다.
끼리끼리 어찌된 연유인지 그럴 듯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고것이 저승꽃 아니유?”
“그려, 아덜이 죽으믄 동해용궁따님애기씨가 수레멜망악심꽃을 멕여서 저승으로 데려간다잖여.”
“심청이가 임당수에 빠졌을 때도 용궁문짝에 저승꽃이 피었다지?”
“환생한 심청이가 이번에도 다시 뛰어들어남?”
“아녀유, 심청이가 빠졌을 적에두 용궁문은 안 열렸시유.”
“근디, 우째 저승할망이 기어나온겨. 참말루다 이상헌 일이여.”
“얼마 전, 남쪽바다에 침몰했다던 쪽배 기억하시오? 300명의 애들이 배에 갇혀있다 죽은. 그 일 때문에 동해용궁따님애기가 나타난 거요.”
북어대가리를 열심히 씹고 있던 사내가 우물우물 말을 했다.
“뭐, 아무튼 꿈쩍도 않던 용궁문이 열렸소이다.”
“이기 무신 구신씨나락까묵는 소리고. 용궁문 열자꼬 불쌍한 얼라덜을 물에 빠짜삐게 한기가?”
“워매, 이삔 새끼덜 그라고 많이 바다에 빠져서 물괴기 밥이 되야불었으까잉. 시방도 떠올리믄 가심이 쑥쑥허니 애려야. 우리같이 늙은 것덜은 낼도 있고 모래도 있고 글피도 있는디 참말로 시상에 그 아까운 새끼덜은 꽃도 못 피고 영영 가불었소.”
“배꾼놈으 자슥이 지놈 먼저 살끼라고 얼라덜은 쪽배에 남기두고 내렸다카드나.”
“그란께 말이요. 어째서 애기덜 거그다 그래놓코 한나도 못 살려냈는가 모르겄소. 이런 징헌 세상이 또 어디겄어. 꽃피는 새끼덜이 인자 필락말락 헐 때 뚝 떨어져불고. 참말로, 이삔 새끼들이 바다 속에서 얼매나 무서울꺼시어. 근디도 나라님은 몇날 며칠이 염뱅지랄을 허구도 못 건져내갖고 찬물 속에다 그라고 내버려뿔고.”
“수레멜망악심꽃을 피워야하는데 건져낼 리가 있겠소.”
나는 그의 엉뚱한 해설이 당황스러워서 “설마허니 나랏님이 그랬겠는가.”하고 따져물었다.
“삼백의 어린 원혼이 있어야만 꽃잎 삼백 개의 멜망꽃을 피울 수 있소이다. 그래서 동해용궁따님애기가 아이들을 데려간 거요.” 해 놓고 사내가 피식 웃었다.
냉담한 그의 태도에 기분은 상했지만 그 내막을 더 알고 싶었다. 그래서 막걸리 한 사발을 가득히 부어 주며 차근히 물었다.
“자네 말을 짐작해 보면 동해용궁따님애기, 그러니까 저승할멈이 이승에 나오려면 멜망꽃이 필요했고. 그 꽃은 어린 아이 삼백 명의 원혼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는 거 아닌가? 아무튼 이 모든 일이 저승할멈의 짓이라는 건데. 대체 왜 그런 겐가?”
막걸리를 들이 킨 사내가 끅 게트림을 하곤 말을 꺼냈다.
“그야 인간세상 생불왕 권력을 차지하려고 한 일이지요. 그 옛날 명진국따님애기와 생불왕 자리를 놓고 싸우다가 저승으로 쫓겨난 이후로 호시탐탐 야욕을 불태우고 있었던 거요. 그런데 때마침 아이들 삼백 명을 태운 쪽배가 침몰했고.”
“나랏님은 내 모린다카고 그라니까네 아덜 영혼으로 멜망꽃을 맹글고 그기 때문에 용궁문짝이 열리따 그 말이고?"
사내는 대답 대신 북어대가리 하나를 집어 오도독 씹으며 고개를 크게 한번 끄덕였다.
이번엔 내가 “허면, 저승할멈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겐가?”하고 재우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