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어중문학과에서 신방과로 전과, 체코 교환학생까지!
요즘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 중에 '유퀴즈온더블럭'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유재석과 조세호가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민들과 인터뷰를 나누는 내용의 프로그램인데, 어제 본 대학로에 있는 방송통신대학교에 경비로 근무하고 계시는 어떤 아저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39살때, 기업 임원으로 억대 연봉을 받다가 계속 승승장구할 거라고 생각하고 돈을 펑펑 쓰고 카드를 긁는 바람에 지금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삶은 살고 있다고 담담하게 고백하는 내용이었다. 그분은 현재 방통대 국문학과 학생으로 열심히 글도 쓰시고, 취미로 카메라에 일상을 담으며 마음만은 풍족한 생활을 하고 계신 것 같아서 정말 보기가 좋았다.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내가 떠올렸던 생각은, 저렇게 자신의 실제 경험을 진솔하게 담백하게, 나를 높이거나 낮추지 않고 꾸밈없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어느 때보다 힘든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 그리고 특히 화장품이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너무 막연하고 주위에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어서 궁금증만 안은 채 취업에 뛰어든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유퀴즈온더블럭'에서는 회마다 공통된 주제를 시민들에게 던지는데, 인상적이었던 질문이 '한 우물을 파는게 좋은가, 아니면 여러 우물을 파는게 좋은가?'라는 질문이었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보자면, 여러 우물을 파 보다가 이 중에 나한테 잘 맞고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때 그 한가지 우물을 깊게 파면 된다라는 것이다.
나는 1학년때 단지, 중국어가 앞으로 전망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했다. 적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중국어가 어느 정도 재밌기는 했지만, 나중에 이걸로 직업을 하고 싶다거나 더 깊게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고, 그래서 평소 방송 쪽에 관심이 많아서 2학년때 신문방송학과로 전과를 하게 되었다. 신문방송학과 수업은 정말 재밌었다. 광고에 대해서 배우기도 하고, 신문이나 방송, 사진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흥미로운 학문이었다. 하지만, 문과가 전반적으로 그런 흐름이긴 하지만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취업이 잘되거나 하지는 않고 오히려 신문방송학과에 가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정작 취업은 어려운 학과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
지금와서 하고 싶은 말은, 전공은 정말 공대나 이과 쪽이 아닌 이상 일반 사무직 취업의 경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영학과를 졸업했다고 해서 다 마케팅 쪽으로 취업하는 것도 아니고, 신문방송학과나 홍보학과를 졸업했다고 해서 다 방송국 pd나 기자, 홍보팀 직원이 되는 것도 아니고, 전공과는 정말 상관없이 다양한 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마케팅 업무를 하려면 꼭 경영학과를 졸업해야 하나요?'와 같은 질문은 현재 시대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가서 대학교 학창 시절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신문방송학과 전과 후에 체코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대학교에 가면 해외에서 한번 쯤은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나의 영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체코였고, 마침 신문방송학 관련 수업이 있어서 좋은 기회로 체코로 떠나게 되었다. 체코에서도 프라하가 아니라 프라하에서 4시간 정도 떨어진 Zlin이라는 소도시에 있는 대학교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걱정없고 가장 마음 편하게 일상을 지냈던 것 같다. 수업을 듣고, 교환학생들과 함께 파티를 하고, 같이 팀플 수업도 하고, 근교 여행을 가기도 하고,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커피나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공원 근처 분수에서 뛰어노는 아기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특히, 외국 친구들이 많다보니 한국에서는 걱정거리, 골칫거리였던 취업 문제에서 해방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1학기 교환학생이 끝나고 한 달 간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오니 이제 앞길이 막막해지더라.
체코가 한 여름 밤의 꿈이었다면, 이제 현실로 돌아오게 된거다. 이제 앞으로 뭘 먹고 살지? 취업은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거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학교에서 취업 특강같이 트레이닝을 시켜주는 잡페어를 신청해서 듣게 되었다. 잡페어는 팀을 꾸려서 자기소개서나 면접, 토론면접 등에 대비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때 만났던 언니 오빠들, 친구들과 아직도 연락하며 꾸준히 모임을 이어나가고 있고, 다행히 그 모임에 있던 사람들은 다 취업도 잘 되고 다들 잘 살고 있다. 아무튼, 그 잡페어를 준비할 때, 옆에 있던 언니, 오빠, 친구들이 모두 다 대기업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니, 나도 덩달아 대기업 마케팅팀이나 홍보팀에 지원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그렇게 4학년 졸업할 때까지 원서를 쓰고 수십군데 기업의 면접을 보았지만 모두 떨어졌다. 나는 원래 화장품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서 아모레퍼시픽에 지원을 했는데, 운이 좋게도 서류에 합격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시아나 공채에도 서류를 합격하게 되었는데 마침 면접 일정이 겹치게 되었다. 아시아나 보다는 아모레퍼시픽에 더 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아시아나가 더 경쟁률이 낮아서 합격률이 높을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아모레퍼시픽 면접을 포기한 채 아시아나 면접에 참가했고, 결과적으로는 탈락했다.
지금와서 후회가 되는 점은, 근거도 없는 이야기만 듣고 주관을 버린채 합격률에만 의지하여 아시아나 면접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물론, 아시아나도 대기업이고 들어가면 정말 좋았겠지만, 아모레퍼시픽에 가면 나의 진정성을 더 어필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후회가 됐다. 물론, 아모레퍼시픽 면접에 갔다고 해서 최종 합격까지 가지 않았을 수 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뼈아픈 고배를 마시고 나서 lg유플러스, 대한항공, 롯데쇼핑 등등 정말 다양한 기업의 면접을 봤지만 낙방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떨어져 마땅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 그만큼 절박하지 않았고 그만큼 가고 싶었던 기업이 아니었고 그곳에서 내가 뭘 할수 있을지, 내가 왜 꼭 그 기업에 가야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불명확했으니까. 그저,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다른 친구들이 모두 지원서를 쓰니까 같이 덩달아 썼던 상황에서 면접관들이 보기에도 나를 뽑을 이유가 없었던 거다. 그때는 왜 나같은 인재를 못알아보지? 왜 나를 뽑지 않는거지? 뽑아주면 열심히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때 나를 뽑아주시지 않아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덕분에 지금 나에게 딱 맞고 즐거운 일을 찾게 되었으니까.